리햐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오페라


이 경선(Kyung-Sun Lee)
 
2005-01-23


Table of Contents

1.  "군트람" op. 25
2.  "꺼진 불" op. 50
3.  "잘로메" op. 54
4.  "엘렉트라" op. 58
5.  "장미기사" op. 59
6.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 op. 60 II
7.  "그림자 없는 여인" op. 65
8.  "간주곡 " op. 72
9.  "이집트의 헬레나" op. 75
10.  "아라벨라" op. 79
11.  "말없는 여인" op. 80
12.  "평화의 날" op. 81
13.  "다프네" op. 82
14.  "다나에의 사랑" op. 83
15.  "카프리치오" op.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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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트람" op. 25

삼막의 사건

각본: 리햐르트 슈트라우스

초연: 1894년 5월 10일 바이마르 (궁정극장)

개정판의 초연: 1940년 10월 29일 바이마르 (국립극장)

등장인물

연로한 공작 (베이스), 프라이힐트 (소프라노, 공작의 딸), 공작 로베르트 (바리톤, 프라이힐트의 남편), 군트람 (테노, 가인), 프리톨드 (베이스, 가수), 광대 (테노), 늙은 여자 (알토), 늙은 남자 (테노), 젊은 남자 두명 (바리톤 2), 세명의 신하 (베이스 3) 사환 (바리톤), 네명의 가인 (테노 2, 베이스 2); 공작의 신하, 가인, 수도승, 하인, 기병, 빈곤한 사람들.

시간과 장소; 13세기 중엽 독일 중세의 거성

내용

일막

군트람이라는 젊은 연애 가인은 감성적인 사랑보다는 기독교의 사랑을 찬미하는 수도원의 회원이다. 전제 군주 로베르트 공작의 영지에서 그는 빈곤한 사람들에게 급식하면서 자기의 가창으로 이 지방 주민과 폭군에게 평화와 사랑의 위력을 납득시켜야겠다는 사명을 자각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또한 이전에 로베르트와 강제 결혼을 해야 했던 프라이힐트를 만난다. 선량한 그녀는 민중의 조그만 반항도 가차없이 억압하는 로베르트가 격분하지 않도록 하여 주민을 도우려고 하지만 허사임을 깨닫고는 호수에 빠져 삶을 마감하려 한다. 이때 군트람이 나타나 그녀를 구조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맙다는 인사로 군트람을 축연에 초대한다.

이막

공작의 궁전에서 다른 가인들이 로베르트를 찬미하는 노래를 하는 동안에 군트람은 평화의 은택을 찬양한다. 로베르트의 비웃음을 산 뒤 큰 칼로 위협을 받자 군트람은 긴급 방어로 그를 살해하게 된다. 프라이힐트는 구속된 군트람을 구출할 것을 결심한다.

삼막

동료인 프리톨드는 수도원의 사자로 감옥에 있는 군트람을 방문하여 살인 설명을 요구한다. 행위 자체가 아니라 은밀한 동기, 즉 프라이힐트에 대한 사랑이 자신의 죄과임을 인지한 그는 오직 자기 자신의 양심에 따라 속죄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수도원 법정에 소환되기를 거절하고 또 프라이힐트의 열렬한 사랑도 단념하며 은둔생활로 들어간다. 군트람은 신과 화해하기 위한 길을 단독으로 떠난 것이다.

작품 설명

자신이 직접 각본도 쓴 슈트라우스의 첫번째 오페라는 오랜 시일에 걸쳐 (1888-1893) 완성되었다. 그는 중세를 배경으로 자유롭게 창작한 오페라 "군트람"의 각본을 여러 차례 수정하였다. 이 이야기의 말단은 애초 친구이자 사부인 알렉산더 리터의 기호에 따라 군트람이 수도원의 규칙을 위반하였다고 자기 자신을 비난하며 성지에서 속죄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집트 여행 중인 1892년 니췌의 작품과 접하게 된 슈트라우스는 위에서 보는 대로 이 부분에 단호한 개정을 하였다. 그래서 오페라의 주인공은 수도원의 규칙이나 모든 공리 공론을 떠나 오로지 자신의 정신적인 율법에 의해 자기 삶을 규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고로 군트람은 니췌의 초인간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되었고 이런 군트람을 통해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본성을 밝혔다고 하겠다. 각본을 쓰도록 격려하던 리터는 삼막 내용이 이렇게 바뀌자 비기독교적이며 비도덕적이라며 이 작품을 거부하였고 그 결과 이 작품은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내적 불화의 씨가 되고 말았다. 내용상으로는 여성을 통해 구원이 되는 바그너의 낭만적인 의도를 맨 처음부터 기피하였지만 슈트라우스가 처음으로 작곡한 오페라의 음악은 바그너의 세력권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교향음악 부분이나 끝에 나오는 군트람의 긴 독창은 앞으로 작곡하게 될 "잘로메"나 "엘렉트라"의 새로운 형식을 이미 예고하고 있다고 하겠다.

바이마르 초연시 그의 부인이 된 파울리네 데 아나는 여성 주역 프라이힐트로 등장하였다. (이 역으로 그녀는 남편의 오페라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연한 셈이다.) 이때부터 상연에 많은 어려움을 동반하였던 오페라 "군트람"은 슈트라우스에게 끝까지 "걱정끼치는 자식"으로 남았다. 뮌헨에서는 가수들이 처음에 역을 거절했을 뿐더러 교향악단도 동맹 파업을 하고 대표단을 극장 총감독에게 보내 이런 "천벌"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하였다. 뮌헨의 초연시 군데 군데 기억력까지 상실한 테노 미코라이 (Mikorey)는 두번째 상연부터는 아예 연금을 올려 받는 조건하에서만 다시 무대에 서겠다고 하여 단 한번의 상연이 되고 말았다. 후에 가르미쉬 별장 정원에 슈트라우스는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에 따른 수난자 기념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있다: "아버지의 교향 악단으로부터 무자비하게 살해된 정직하고 정결한 청년 가인 군트람의 묘. 부디 평화롭게 잠들기를 바라도다!" 음악사에 있어 20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정될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대 실패로 시작하였다. 이 작품을 다시 듣게 된 때는 대략 40년 후다. 70세 생일을 기념하여 (악극이 아니라) 음악회 형식으로 많은 부분을 잘라 내 줄여서 로스바우트 지휘로 베를린 라디오 관현악단이 연주하였다. 이때 작곡가는 오페라 무대에서 생육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교정하여 신판을 인쇄에 넘겼다. 이 개정판에 따라 1940년 바이마르에서 처음 상연된 후 1942년 6월 13일 베를린의 초연이 있었다. 오늘날에 그리 자주 연주되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는 아니다.

2.  "꺼진 불" op. 50

일막의 가창시

각본: 에른스트 폰 볼초겐

초연: 1901년 11월 21일 드레스덴 (궁정극장)

개정판의 초연: 1940년 10월 29일 바이마르 (국립극장)

등장인물

슈바이케르 폰 군델핑엔 (테노, 태수), 오르톨프 젠트링어 (베이스, 시장), 디무트 (소프라노, 시장의 딸), 그녀의 친구들 엘스베트 (메쪼 소프라노), 비겔리스 (알토), 마르가레트 (소프라노), 쿤라트 (바리톤, 조정자), 외르크 푀쉘 (베이스, 술집 주인), 헤메를라인 (바리톤, 식료품 상인), 코펠 (베이스, 대장장이), 쿤츠 길겐스톡 (베이스, 빵제조인이며 양조인), 오르틀립 툴벡 (테노, 통장이), 우르줄라 (알토, 통장이 부인), 루거 아스펙 (테노, 도공), 발푸륵 (소프라노, 도공 부인); 시민과 하인, 어린이 (합창).

시간과 장소; 우화적인 원시 시대 뮌헨의 하지날

상연 시간; 약 1 1/2 시간

내용

"일막의 가창시"라는 진기한 쟝르의 명칭을 달고 있는 (바이에른 지방) 희가극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 풍습에 따라 뮌헨의 젠틀링어 거리 (Sentlinger Gasse)에는 하지의 큰 횃불 놓기 의식을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 있고 어린이들은 노래하며 집집마다 나무를 구하러 다닌다. 이렇게 모인 장작은 성문 앞 공터에 쌓아 올려져 어두워지면 점화될 것이다. 아이들이 시장의 집에 들리자 그의 딸 디무트 (Diemut)는 과자와 마실 것을 제공한다. 건너 편 집의 문을 두드리자 처음엔 대답이 없더니 다시 힘차게 두드리자 드디어 품위 있는 한 남자가 나온다. 출판물에 몰두하여 이 축제일을 잊어 버린 것이다. 쿤라트 (Kunrad)라 불리는 그는 얼마 전부터 모든 사람과 교제없이 고립하여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전에 그 집에서 살던 마술사의 후계자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관대하게 자기 집에서 가져 갈 나무가 있으면 다 가져 가라고 한다. 애들이 나무를 밖으로 나르는 사이 쿤라트는 디무트를 바라 보다가는 마음에 들어 뮌헨의 온 민중이 보는 앞에서 그녀의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혐오감을 갖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벌을 내릴 결심을 한다. 그래서 쿤라트에게 은밀히 만나 줄 약속을 하며 밤에 쇠바구니를 창문 밖에 드리운다. 쿤라트가 몰래 숨어 들어가기 위해 도르레 장치가 된 그 바구니 안으로 들어 서자 그녀는 위로 끌어 당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반쯤 되는 높이에 다다르자 멈추고는 이미 약속한 어릴 적 친구들의 도움으로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미묘한 상황에 처한 쿤라트를 마음껏 조소하였다.

그러자 쿤라트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대 요술장이의 도움을 청해 도시 전체의 빛과 불을 순식간에 꺼지도록 하였다. 그러니까 성문 앞의 장작불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쿤라트는 어리둥절해진 시민들을 질책하기 시작하였다; 소심하게도 당신들은 이 도시에 오로지 공적만을 세웠던 나의 대 스승 라이히하르트 (Meister Reichhart)를 당시 추방하였소. 나는 그 분의 권고로 그의 일을 계속 추진하려고 고향으로 돌아 왔소. 진실하고 영원한 빛과 불의 요소는 여자의 몸에 토대를 두는데 (리햐르트 바그너가 1851년 8월 24일 아우구스트 뢰켈 (August Roeckel)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참조한 글) 내가 고른 여인이 나의 영원한 빛이 되기를 거부하여 이 도시의 모든 빛과 불을 꺼버렸다오. 이러니 오로지 뜨거운 처녀의 몸으로 부터 나온 불로 다시 점화되어야 하는 것이요. 디무트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 들었다. 쿤라트가 마침내 그녀 방으로 들어 가게 되자 도시에 불과 빛은 단숨에 되돌아 왔고 군중은 기뻐서 환성을 질렀다.

작품 설명

이 오페라에서 등장 인물 쿤라트는 바그너인 라이히하르트 (바그너의 이름 리햐르트를 넌지시 암시하고 있음)의 후계자로 슈트라우스 자신을 가르킨다. 뮌헨 슈바빙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흠뻑 젖어 풍자적으로 씌여진 "꺼진 불"의 가사는 슈트라우스의 의도를 과감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는 이미 인용한 바그너 글의 격정을 계속 상승시켜서 예술에 대해 편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 그들의 몰이해, 악의, 질투 등을 탄핵하고 자신의 미적 원칙을 적나라하게 포고한다. 그래서 공격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적대자들과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은 이 오페라를 자화자찬하는 졸렬한 작품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들을 더욱 불쾌하게 만든 것은 속물적인 뮌헨사람들에 대한 훈계연설 중 바그너 이름과 함께 슈트라우스와 가사를 쓴 볼초겐의 이름이 또한 노골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꺼진 불"의 내용은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분위기를 상기시키는데 사건 또한 같은 날 전개되어 슈트라우스가 이 작품에서 자격을 갖춘 바그너의 계승자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명백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바그너의 "라인골트"나 "방랑하는 네덜란드 사람"의 음악이 인용된 것은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열정과 풍자와 조롱의 요소가 서로 얽혀 있는 "꺼진 불"의 음악은 이 외에 부드럽고 감격적인 서정시 (디무트의 한여름밤, 쿤라트와 디무트의 이중창), 격앙된 동기로 출발하는 음악 (쿤라트-, 요술사-, 불꽃동기)과 뮌헨의 통속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 (어린이합창, 디무트의 버찌의 노래, 친구들의 조소하는 노래)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오페라 "군트람"에서 나중에 슈트라우스 특유의 양식이 되는 여러 증후를 찾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그너의 영향이 우세하다고 본다면 "꺼진 불"에서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양식을 향해 결정적인 첫 걸음을 내딛었다고 하겠다. 초연이 끝난 다음 씨즌에 들어서 "꺼진 불"은 서른이 넘는 무대에서 상연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독일을 떠나서는 특히 이탈리아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오페라 작곡가로서 슈트라우스가 국제적으로 갑작스런 출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905년 초연된 "잘로메"를 작곡했기 때문이다.

3.  "잘로메" op. 54

일막의 음악극

원전: 오스카 와일드의 "잘로메", 헤드비히 라흐만의 독일어 번역

초연: 1905년 12월 09일 드레스덴 (궁정극장)

등장인물

헤롯 (테노, 유태 왕국 팔레스티나의 영주), 헤로디아 (메쪼소프라노, 헤롯의 아내), 잘로메 (소프라노, 헤로디아의 딸), 요한 (바리톤, 선지자), 나라봇 (테노, 시리아의 친위병 사령관), 헤로이아의 시동 (알토), 다섯명의 유대인 (테노 4, 베이스 1), 두명의 나자레 사람 (베이스 1, 테노 1), 한 카파도치에, 한 노예, 두명의 군인, 로마인, 유태인, 이집트인, 하인 등등.

시간과 장소; 서기 30년경 예루살렘 헤롯의 궁전

상연 시간; 약 1 1/4 시간

내용

휘황 찬란한 헤롯의 궁전에서 그의 생일 연회가 떠들썩하게 진행되고 있다. 분봉왕 헤롯은 의붓딸 잘로메를 계속 음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테라스에서 다른 군인들과 함께 보초를 서고 있는 시리아의 젊은 장교 나라봇은 잘로메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찌는 듯이 더운 밤 유태인들은 구세주의 탄생이나 선지자에 대한 종교 토론에 열렬하다. 수갱도에는 헤로디아의 재촉으로 헤롯이 체포한 세례요한이 갇혀 있다. 군인들은 수감자가 헤롯의 말대로 대 예언자인가에 대해 언쟁을 벌인다. 이윽고 계부의 눈길에 진저리가 난 젊은 공주 잘로메는 향연장을 떠나 테라스로 나온다. 사실 독특한 기질의 이 유태 공주는 주변의 남자들에게 - 늘 종교 문제로 말다툼하는 유태인, 교활한 이집트인, 포악한 로마인 - 별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 헤롯은 그녀에게 겁장이로 보이며 나라봇은 패기없는 중대장일 뿐이다.

잘로메는 지하 감옥에서 나는 요한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졌다. 얼마 전 그녀의 어머니를 방탕하다며 탄핵하던 바로 그 선지자인가? 잘로메에게 다가간 나라봇은 모른다고 대답한다.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궁금해 하는 중 한 군인이 아주 젊은 사람이라고 하자 잘로메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그를 꼭 만나 보고 싶었다. 잘로메는 자신에 대한 나라봇의 맹종적인 사랑을 느끼고는 그에게 청원한다. 이전에 헤롯 왕이 요한을 지하 감옥 밖으로 나오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명령을 내렸지만 나라봇은 그만 약해져서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게 된다. 팽팽히 긴장한 가운데 잘로메는 요한이 등장하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흐린 달빛 아래 여위고 창백한 그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제까지 잘로메는 수갱도에서 나온 요한과 같은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잘로메 앞에서 동물적인 욕구를 감추기 어려워하는데 그는 잘로메를 쳐다 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요한은 앞을 향해 멀리 내다 보며 궁전과 나라 전체를 감싸고 있는 악덕을 비난하며 헤로디아의 파렴치한 생활을 저주하였다. 또한 되풀이하여 그는 구세주의 왕림을 예고하였다. 이런 요한에게 마음을 빼앗겨 잘로메는 그에게 가까이 간다. 설명할 수 없는 열정에 사로잡힌 그녀는 마침내 그와 입맞춤을 하려고 하나 요한은 이를 장중히 물리친다. 이런 두 사람의 굳은 결심이 격렬하게 투쟁하고 있는 가운데 나라봇은 잘로메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쓴다. 이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자 그는 앞으로 가공할 만한 일이 닥칠 것을 예상하며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잘로메의 관심은 선지자 요한에게만 향해 있어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는 잇달아 색정적인 접근을 시도하나 그는 이를 단호히 뿌리치고는 지하 감옥으로 내려 간다.

시끄러운 소리에 이끌려 헤롯은 헤로디아와 궁정 조신을 이끌고 테라스로 나온다. 나라봇의 시체를 보고 또 그의 자살 소식을 들으며 헤롯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율한다. 목적 달성에 실패하여 돌같이 굳어 있는 잘로메를 보자 그는 같이 음료를 마시자고, 과일을 먹자고 또 자기 옥좌에 앉기를 청하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부한다. 이때 세례 요한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자 헤로디아는 자신을 비방하는 그가 사형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헤롯은 요한을 대 선지자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그를 적대하는 일을 감행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헤롯의 견해는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는 유태인들의 토론을 불러 일으킨다; 다시 요한의 탄핵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헤로디아는 격노하고 잘로메는 매우 감격해 한다. 이들의 주의를 돌리려고 헤롯은 잘로메에게 춤을 추어보지 않겠냐고 권유한다. 잘로메가 거절하자 헤롯의 청은 더욱 간절해져 급기야 그를 위해 춤을 춘다면 그녀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 나라의 절반이라도 구하면 주리라고 한다. 마침내 그녀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윽고 잘로메가 몸을 감싸고 있던 일곱 장의 천을 한장 한장 떨어뜨리며 춤을 끝내자 헤롯은 황홀하여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아주 결연히 요한의 머리라고 대답하자 깜짝 놀란 헤롯은 다른 모든 것을 줄테니 이 청구만은 취소해 달라고 하지만 잘로메는 방금 전에 서약한 사실을 일깨우며 계속 고집한다. 결국 사형 집행인은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고 잠시 후 안달하며 기다리는 잘로메에게 은쟁반에 받힌 요한의 머리가 건네진다. 의기 양양하여 그녀는 자신을 거부하던 그의 차가운 입술을 탐욕스럽게 맞춘다. 혐오감을 갖고 줄곧 지켜보던 영주는 신이 보낸 사람을 죽인 벌로 당할 재해에 공포를 느껴 결국 일어나 신호를 보낸다. 이에 군인들은 돌진하여 방패로 그녀를 참살한다.

작품 설명

슈트라우스는 20세기 초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자신이 창단한 관현악단 "베를린 음악가 관현악단 (Berliner Tonkuenstlerorchester 1901-1903)"으로 새로 나온 동시대 음악을 지휘하는 반면, 굴지의 문필가, 화가, 조각가와 밀접한 교류를 맺게되었다. 베를린은 당시 현대화의 물결에 휩싸여 예술 전반에 걸쳐 미래의 모습을 강구하며 극장 개혁에 대한 열띤 토론이 전개되던 곳이었다. 그래서 "꺼진 불"을 이을 오페라 소재를 찾고 있던 슈트라우스가 인습적인 각본에 그리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잘로메와 그녀의 어머니 헤로디아, 의붓아버지인 헤롯에 대한 극적인 내용의 원전은 신약 성경 마태복음 14장 (3-12), 마가복음 6장 (17-29)으로 많은 조형 예술 뿐만 아니라 고대 영국의 비극등 문학의 소재가 되어왔다.

마태복음 14장: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풍자적인 서사시 아타 트롤 (Atta Troll, 1843)에서 독일 작가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는 처음으로 헤로디아의 보복 동기를 거절당한 사랑에 두어 성경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이 헤로디아-잘로메 소재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불란서의 시대 정신에 어울려 1876년 구스타프 모로 (Gustave Moreau)는 "잘로메의 춤" 이라는 유화를 전시하였고 구스타브 플로베르는 (Gustave Flaubert) 1877년 소설 "헤로디아 (Hérodias)"를 발표하였다. 1881년에는 드디어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쥴 마스네 (Jules Massenet)의 오페라 "헤로디아데 (Hérodiade)"가 벨기에의 브류쎌에서 상연되었다. 전통적인 범위에 속하는 이 오페라의 중심 인물은 플로베르의 소설에서처럼 잘로메가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잘로메"에서 잘로메는 희곡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어머니의 뜻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유태 공주로 등장한다. 마스네의 오페라 상연 때의 스캔들을 잘 아는 그는 이 희곡을 구상할 때 청교도적인 영국에서 상연이 금지될 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하며 영국의 연극계와 검열 당국에 만일 이 작품이 검열관의 혹평을 받을 경우 불란서로 이주해 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실망스럽게도 영국사회에 대한 그의 불신은 맞아 떨어졌다. "잘로메"는 금서 목록에 들어가고 말아 이 일막짜리 희곡은 1893년 불란서 파리에서 간행되었다. 이상스럽게도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와일드는 이 작품을 영어가 아니라 (훌륭한)불어로 썼는데 강한 천주교의 영향으로 불란서에서도 무대에 올려지지는 않았다.

정작 이 연극이 처음으로 상연된 곳은 1901년 독일의 브레슬라우 (지금은 폴랜드 영토)이다. 슈트라우스는 1902년 11월 베를린의 "소극장 (Kleines Theater)"에서 막스 라인하르트의 연출로 "잘로메" (헤드비히 라흐만의 번역)를 감상하였다. 이때 그는 빈 출신의 젊은 작가 안톤 린트너 (Anton Lindtner)가 보내서 벌써 라흐만의 "잘로메"를 갖고 있었다. 린트너는 이 번역판을 토대로 자신이 오페라 각본을 쓰면 어떻겠냐고 제의하였다. 슈트라우스가 동의하자 린트너는 몇 장면을 운문화하여 보냈는데 슈트라우스는 이 리브레토를 읽으면서 어쩐지 작곡에 착수할 수가 없었다. 이러던 중 슈트라우스는 문장 자체가 음악적인 이 희곡은 관습적인 오페라 각본으로 새로 써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와일드가 쓴 그대로, 예를 들어 "잘로메 공주가 오늘 밤 참으로 아름답구나"하는 구절을 그대로 작곡하면 안 된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자 슈트라우스는 라흐만 번역의 "잘로메"를 이용하여 직접 오페라 각본을 마련하였다. 말하자면 빌립의 살해 보고 등을 삭제하여 내용을 농축하며 문장을 단순화하고 조연자의 역할을 억제하여 오페라 작곡에 일관성을 추구한 것이다.

슈트라우스는 "잘로메" 작곡 계획을 세우고 다른 경쟁자가 생길까봐 "비밀"로 아버지에게만 털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초연 지휘의 영광을 차지할 뻔하던 니키쉬와 마알러는 작곡이 이미 상당히 진전되고 나서 이 소식에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 마알러는 소재가 잔인하다며 작곡에 반대하였다고 한다. 사건 진행으로 보아 잘로메는 외형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내향적인 첫 부분에는 중심 인물인 헤롯, 요한, 잘로메가 제시되고 나라봇이 명령을 어긴 후 목숨을 끊는 에피소드, 그리고 잘로메와 요한의 첫 만남의 내용까지 담겨 있다. 사건 진행이 비교적 밖으로 드러나는 두번째 부분은 헤로디아와 헤롯의 등장부터 시작하여 잘로메의 호의를 얻으려고 애쓰는 헤롯, 구세주 왕림의 약속, 이것에 대한 유태인들의 부인, 잘로메의 춤, 요한의 참수, 잘로메의 승리와 죽음의 장면을 포함한다. 이 두 부분은 관현악 간주곡으로 연결되어 있다.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는 이 오페라는 극적인 표현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 전례가 없을 정도이다. 서곡없이 짧은 클라리넷의 상향 연속음으로만 막이 오르는데 곧 이상 야릇하게 유혹하는 듯한 잘로메의 동기로 이어진다. 거기다 분명치 않은 현악기의 트레몰로로 관중은 첫 몇마디를 듣는 순간 남방으로 옮겨져 달빛 아래 무더운 공기를 느끼게 된다. 잘로메의 등장은 뱀같이 튀어 오르는 듯한 음형으로, 황망스럽게 말다툼하는 다섯명의 유태인들은 셋잇단음 자체를 다시 짧고 길게 나누어 반복함으로 묘사된다. 분명한 화음에 전음계적인 주선율을 선택하여 침착하고 엄숙한 선지자 요한의 모습과 단순하고 반석같은 그의 믿음을 나타내었는데 이는 잘로메를 표시하는 여러 동기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고정되지 않고 떠다니는 듯한 가락은 잘로메의 호색성을 추리하게 하고 화려한 선율에는 그녀의 열정적인 사랑이 실려 있다. 드디어 요한과 입을 맞추겠다고 절규하는 유태 공주의 음악은 여러 색채와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슈트라우스는 대략 30개에 다다르는 동기를 마련하여 극의 기초를 삼아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의 구성 원리를 유지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교향시 작곡으로 완숙된 그의 독자성은 주제선택이나 화음, 리듬, 악기 편성에 있어 너무도 뚜렷하여 바그너의 음악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사실 그때까지 일반 오페라의 관현악단이 성부를 반주하는 역활을 했다면 "잘로메"에서는 관현악 음악이 극 줄거리의 핵심을 이끌어 간다고 하겠다. "잘로메"의 관현악은 현악기 (60), 목관악기 (18), 금관악기 (15), 팀파니, 여러 타악기, 하프, 철금, 실로폰, 오르간, 하르모니움으로 바리톤오보에를 제외하면 바그너작품의 관현악과 별다름이 없다. 하지만 슈트라우스는 이 기구를 아주 세련되고 능숙하게 다루어 그가 상상하는 하는 바를 소리로 정확하게 재현하였다. 그러니까 관현악 부분을 통해 청중은 장소와 분위기 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의 오만가지 흥분과 감동까지 함께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라봇이 아름다운 잘로메만 바라 보고 있는 반면 다른 군인들에게는 연회상에 침울하게 앉아 있는 헤롯이 주의를 불러 일으킨다. 첫 상면을 앞두고 긴장감에 싸여 요한이 수갱도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잘로메의 심경, 뿌리쳐진 사랑으로 오히려 더욱 거세지는 그녀의 정열, 잘린 요한의 머리가 지하 우물 바깥에 있는 잘로메에게 주어질 때까지의 오싹하는 정적등은 관현악을 통해 실감있게 그려진다. 말하자면 "잘로메"의 음악은 대사의 내용을 역설하고 특이한 색을 입힐 뿐만 아니라 이처럼 등장 인물의 잠재 의식까지 조명하기에 특별하다. "잘로메" 작곡과 시기를 같이 하여 지그문트 프로이트 (Siegmund Freud)의 정신 분석이라는 새 학문이 탄생한 것은 그래서 괄목할 만한 일이다.

예루살렘에 갔다 온 적은 없지만 청년 시절 이집트 여행을 통해 중유럽과 전혀 다른 남방의 기후, 분위기, 태양을 경험한 바 있던 슈트라우스는 당시 근동 지방이나 유태인을 소재로 한 오페라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의 견해로는 꼭 들어 있어야 할 동방적인 음색과 작열하는 태양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잘로메"에서 그는 여러 빛깔을 띤 기이한 종지를 마련하여 이국풍의 화성을 고취하고 뚜렷한 인물 묘사를 위하여 복조 음악도 채택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 헤롯과 나자레 사람들의 상반성을 리듬으로만 묘사하려고 했는데 충분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조성과의 연결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풍부한 반음계적인 변화를 통해 사용 화음도 극도로 확장하였다. 이 오페라의 특별한 내용과 이국적인 배경은 또한 통상적이 아닌 리듬과 박절을 요구하였다. 슈트라우스는 달성하고자 하는 극적 표현을 위해 자주 박자를 바꾸고 박절의 중심도 이동시켰다. 이러는 사이 극의 진행에 따라 부단히 변형되는 음악적 동기와 주제는 흉하게 일그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에 뒷걸음치지 않고 그가 마음으로 듣고 보는 그대로를 음악으로 묘사하였다. 슈트라우스 음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하겠다. 교향시에서처럼 온갖 감정의 기복을 관현악기의 모든 색채와 연주 가능성을 동원하여 능숙하게 표현하면서도 그 자신은 등장 인물의 행위나 감동에 거리를 유지한다는 거다. 세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잘로메"는 그래서 이상이나 비극적인 갈등을 다루는 오페라가 아니며 바그너 오페라에서 볼 수 있는 구제나 동정에 대한 음악극도 아니다. 오로지 잘로메의 거리낌없는 욕정과 점점 증가하는 학대음란증적인 이성에 대한 탐욕의 결과로 처참하고 끔찍한 일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즉 관중이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바로 도덕이나 윤리와는 관계없이 슈트라우스가 그냥 병적이고 비틀어진 모습을 묘사하며, 또 전혀 다른 잘로메와 요한의 세계가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발작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후에 비장한 것은 바그너가 상세하게 진술하였고 자신의 "잘로메"는 치명적인 결말로 끝나는 스케르쪼라고 들어맞게 요약했다.

이 오페라에서 관중이 경험하는 또다른 획기적인 요소는 잘로메의 독무이다. 노출증으로 보여 질 위험을 갖고 있는 "일곱장의 수건춤"은 사실 내면화된 극적인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잘로메는 쉽지 않은 역으로 우선 악보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확실한 음악성과 변형가능성이 풍부한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가 맡아야 하는데, 바로 이 무용시 때문에 매혹적인 미모를 지니며 관능을 자극하는 춤까지 출 수 있는 가수여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춤을 추고 난 다음에 잘로메는 역과 오페라의 최고점을 이루는 마지막 장면에서 처형된 세례요한의 머리를 앞에 놓고 사랑의 송가를 또한 열렬히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을 두루 갖춘 소프라노가 과연 얼마나 많겠는가? 이 문제는 그래서 오랫동안 무용수를 따로 등장시켜 해결했는데 그리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없었다. 한 역을 육체뿐만 아니라 기질이 다른 두 인물이 나누어 상연한다는 것은 결국 설득력을 저하하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판쳇테 베르훈츠는 처음으로 춤까지 직접 춘 소프라노 가수 (1906년 브레슬라우)였다.

위에서 열거한 대로 오페라 "잘로메"는 일단 당시 익숙하지 않은 음악으로 청중을 당혹하게 했지만 심한 물의를 일으킨 것은 무엇보다도 제기된 문제와 충격적인 가사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재적인 작품이며 시대의 걸작이라고 판단한 마알러의 항쟁적인 변호에도 불구하고 성직자의 반대로 빈 궁정오페라에서는 (따라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오페라까지도) 군주 정체의 붕괴로 궁정극장 감찰관이 완전히 해산되기 몇달 전까지 상연 금지되었다. 그래서 빈 궁정 오페라의 "잘로메"초연은 1918년 시월에야 이루어졌다. (1910년 페릭스 바인가르트너 지휘의 잘로메는 빈의 민중오페라에서였다.)

드레스덴 초연 후 25년이 지나서 슈트라우스는 새로운 연출을 계기로 특히 잘로메역에 유리하도록 악기 편성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였다. 이때 그는 잘로메의 춤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피력하였다; 동방의 공주인 만큼 열광적인 마지막 2/4 박자 부분을 제외하고는 단정하고 품위있는 몸짓으로 추어야 적당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비밀을 어떻게 설명하겠냐는 물음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결말을 어떻게 해석하시든지 당신의 감각에 맡기겠습니다. 마치 여성의 본성과도 같이 규명할 수 없다고 봅니다. 나 자신조차도 그리 정확하게 안다고 할 수 없군요. 만일 그렇다면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저널리스트일 겁니다! "

4.  "엘렉트라" op. 58

일막의 음악을 위한 비극

각본: 후고 호프만스탈

초연: 1909년 1월 25일 드레스덴 (궁정극장)

등장인물

클뤼템네스트라 (메쪼 소프라노, 아가멤논의 과부, 뮈케네의 여왕), 엘렉트라와 크뤼조테미스 (소프라노, 그녀의 딸), 오레스트 (바리톤, 그녀의 아들), 에기스트 (테노, 그녀의 정부), 오레스트의 후견인과 심복 (베이스), 하인들과 심복들, 클뤼템네스트라의 옷자락 받드는 여인 등등

시간과 장소; 트로야 전쟁 후 뮈케네의 궁전

상연 시간; 약 1 1/4 시간

내용

고대 그리스의 도시 뮈케네의 펠롭스 왕가 (또는 그의 아들인 아트레우스 왕가)에는 옛날부터 가족간의 살인이 자주 일어났다. 트로야 전쟁에서 돌아온 아트레우스의 아들인 아가멤논은 부인 클뤼템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에기스트에 의해 욕실에서 도끼로 살해되었다. 이들은 아가멤논의 어린 아들 오레스트마저 죽이려고 하였으나 오레스트의 누나인 엘렉트라가 그를 적시에 포키스의 스트로피오스 왕에게 피신시켰다.

이후로 엘렉트라는 온갖 멸시와 어려움 속에서 지내야 했다. 그녀는 또한 아버지를 잃은 비탄에 젖어 보복의 날만 기다리며 살고 있었다. (바로 후견인에 의해 주의 깊게 양육되고 있는 오레스트가 앞으로 해내야 할 과제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동생 크뤼조테미스와는 달리 도주할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녀를 탑 속에 감금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크뤼조테미스가 경고해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오레스트에 대한 악몽으로 수면에 방해를 받은 클뤼템네스트라가 신전에 제물을 바치기 위해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안마당으로 나오자 피하지 않고 맞선다. 평안한 잠을 위해 무얼 바쳐야 좋겠느냐고 묻자 엘렉트라는 동물도 소녀도 아닌 한 여인이 봉헌되어야만 한다고 대답하나 클뤼템네스트라는 그 속뜻을 알아 차리지 못한다. 몇년 만에 다시 어머니에게 붙임성을 보인 엘렉트라는 그러나 곧 대화 주제를 동생 오레스트로 돌리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 불편해 하는 그녀에게 평온을 찾기 전 저지른 비행의 피값을 치루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해 버린다. 이렇게 비등점에 달한 대결은 클뤼템네스트라의 한 심복이 나타남으로 중단되고 만다. 그녀가 몇마디 귓속말을 하자 클뤼템네스트라는 승리에 찬 눈빛으로 엘렉트라를 흘깃 바라본 뒤 궁전으로 서둘러 들어 간다.

그것에 이어서 곧 크뤼조테미스가 달려 오더니 울면서 오레스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동생을 위해 당시 도끼를 매장하여 지키고 있었던 엘렉트라는 믿고 싶지 않은 이 보고에 심한 타격을 받는다. 그녀는 크뤼조테미스에게 오늘 밤 같이 일을 완수하자고 간청한다. 그러나 사랑을 찾아 어머니가 되고 싶은 소원을 가진 크뤼조테미스는 언니의 살인 계획에 경악하며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자 엘렉트라는 단독으로 해낼 양으로 도끼를 찾기 위해 땅을 판다. 이때 성문 앞에 한 낯선 사람이 나타난다. 깜짝 놀란 엘렉트라에게 그는 처음에 (시녀로 간주하고) 오레스트의 죽음을 알리러 왔다고 한다. 이어서 엘렉트라가 자기 이름을 대자 자신이 바로 오레스트라고 밝힌다. 다시 한번 크게 놀란 엘렉트라는 드디어 그 동안에 겪은 온갖 모욕과 비참한 삶에 대해 보고한 뒤 또한 그녀의 슬픔과 증오심을 나타낸다. 오레스트는 보복해야 한다는 자신의 사명을 다시 상기하고 급히 궁전으로 들어 간다. 마침내 클뤼템네스트라의 비명이 들리고 크뤼조테미스와 하녀들은 놀라 궁전으로 달려 가는데 에기스트는 오레스트가 죽었다는 기쁨의 소식이 진실인지 직접 확인하려고 집으로 돌아 온다. 평상시와는 달리 엘렉트라는 그에게 다가가 횃불로 가는 길을 비춰 준다. 그가 그녀의 태도를 의아스럽게 생각하며 어두운 궁궐로 들어서자 그도 곧 클뤼템네스트라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 도와 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에기스트의 신하와 하녀들이 달려 나온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오레스트의 하인 일동에 의해 곧 압도되고 만다. 엘렉트라는 일생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 동생에게 도끼를 채 건네 주지 못하여 불안해 하던 엘렉트라는 기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환희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처음에 장엄하게 거닐던 그녀는 기쁨에 도취되어 점점 격렬하게 움직인다. 엄청난 승리감을 느끼며 황홀경에 이른 그녀는 마침내 생명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진다.

작품 설명

아트레우스 집안의 비극은 이미 여러 고대 작가 -- 아이스휠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 에 의해 작품화되었다. 호프만스탈은 1903년 소포클레스의 같은 제목의 비극 (기원전 5세기)을 바탕으로 "엘렉트라"를 부흥하였다. 이들 작품의 상이점을 열거하자면 먼저 소포클레스 작품에서 오레스트가 처음부터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무덤 앞에 등장하는 반면 호프만스탈은 그의 출현을 극의 전환점까지 미루었다. 또한 인물들이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에서 오직 자연력이나 구속되지 않은 열정에 의해 행동한다면 호프만스탈은 이들을 또렷한 의식 세계로 끄집어 내어 자신의 통찰에 바탕을 둔 규준에 따르게 한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유한을 풀어 드리는 것은 자식의 의무로 소포클레스의 작품에 불가피한 비운으로 나타내졌지만 호프만스탈의 "엘렉트라"에서 엘렉트라의 복수욕은 타락한 격정과 과도하게 상승된 증오에서 발원한다. 오로지 이런 충동의 둘레만을 맴돌고 있다는 점에서 호프만스탈의 엘렉트라는 오스카 와일드 (또한 슈트라우스)의 잘로메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고대 비극 작가의 작품에 전적으로 빠져 있는 것은 호프만스탈이 슈트라우스를 위해 안출한 엘렉트라의 죽음의 무도이다. 춤을 모든 예술의 어머니로 말하자면 어느 정도까지 그들 사이를 중재한다고 높이 평가하던 슈트라우스는 이미 여러 번 자신의 음악에 춤의 요소를 활용하였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꺼진 불", "잘로메". 슈트라우스는 후에 (1914년) 발레 음악 "요제프의 성담"(Josephslegende op. 63)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사건의 진행으로 보아 엘렉트라는 3 부분으로 나누어 진다.

1. 서막으로 시녀들의 장면, 엘렉트라의 독백, 크뤼조테미스의 등장, 자매의 첫번째 대담

2. 클뤼템네스트라의 출현, 그녀의 독백, 엘렉트라와의 대결, 클뤼템네스트라의 외관상의 승리

3. "오레스트가 죽었다"와 "오레스트는 살아 있다 "는 가사 사이에 일어난 사건: 자매의 두번째 대담 -- 도끼를 파내는 장면, 오레스트와 엘렉트라가 서로 알아 보는 장면, 실행한 복수, 해방의 포고, 폐막으로 죽음의 춤

음악상으로는 엘렉트라의 독백, 클뤼템네스트라의 봉헌 행렬, 엘렉트라와 오레스트의 식별 장면, 죽음의 무도인 4 부분의 큰 덩어리로 떼어지는데 사이 사이 크뤼조테미스나 하인, 에기스트 등의 짤막한 등장으로 고도의 긴장과 완화 상태가 대체하며 균형 잡힌 대칭을 이룬다.

전례적인 오페라와는 달리 "엘렉트라"에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슈트라우스는 여하튼 잘로메의 사랑을 거절한 세례요한이 등장하는 "잘로메"에서 보다 한 걸음 더 나갔다고 하겠다. 오페라가 시작한 후 곧 출현하는 엘렉트라는 끝까지 무대에 머무르는 반면 남성 (오레스트와 에기스트)의 역할은 극히 짧고 삽화적이어서 여성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비극의 원동력은 엘렉트라의 신들린 상태와 어머니 클뤼템네스트라 마음의 무거운 짐에 있다. 정신병학에서 딸과 아버지의 지나치게 강한 연결을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하듯이 엘렉트라의 첫번째 독백은 벌써 그녀의 병적인 종속성을 나타낸다. 매일 저녁 죽은 아버지와 대담하는 엘렉트라는 관현악단이 규칙적으로 완강하게 내리치듯 울리는 사이 "아가멤논! 아버지!"하며 외친다. 그녀는 아버지가 살해되는 끔찍한 장면의 환상을 보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 강력하고 기념비적인 아가멤논동기는 오페라 전체를 에워싸고 있어 막이 오르면서 클뤼템네스트라를 고발하듯 격렬히 울려 퍼진다. 또한 라-단조 분산 삼화음으로 구성된 이 동기는 소포클레스의 서술을 상기하게도 한다; "그들은 그의 머리를 마치 벌채하는 사람이 숲 속의 떡갈 나무를 찍듯이 도끼로 쪼갠다."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쓰인 이 동기는 오페라 종말에서 위협적이며 고집세게 들리는데 중간에도 엘렉트라 독백에서 아가멤논과 관련된 부분에 계속 인용되고 있다. 이 절규에 이어 곧 온화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상처를 어루만지듯 떠오르며 그녀는 애정 깊은 (사실 그가 전혀 그렇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아버지를 회상한다. 오페라의 주요 동기인 이 부성애의 동기는 효심의 동기가 되어 엘렉트라는 복수할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엘렉트라와는 전혀 반대인 크뤼조테미스는 저주받은 집안에서 예외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아가멤논의 딸 중에서 가장 비대중적인 그녀는 광명을 좇는 후예로 여성으로서의 행복을 바라나 실현되지 않아 안타까와 한다. 슈트라우스는 엘렉트라와 대조되는 이런 그녀를 부드럽고 다감한 가락으로 특징지웠다. 그래서 두 인물이 다 극적 소프라노를 위한 역이어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엘렉트라의 복수의 광기만큼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은 클뤼템네스트라의 공포감이다. 악몽에 시달리고 탄핵하는 딸 엘렉트라와 대결해야 하는 그녀는 뮈케네 궁전에 갇혀 있다고 느끼며 자신의 죄값에 대한 두려움과 오레스트가 언젠가는 와서 보복하리라는 병적인 상상으로 괴로와 한다. 온갖 보석과 부적으로 덮힌 그녀는 마치 살아 있는 시체처럼 핏기 없는 얼굴로 등장한다. 호프만스탈의 감독 지시에 따르면 주홍색 옷을 입어 더욱 창백해 보이는 그녀는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상당히 힘들어 하는 기색이다. 걸치고 있는 많은 장신구과 액막이는 걸을 때마다 서로 부딪쳐 스산한 소리를 내고 그녀는 마치 꿈에서 말하듯이 비자연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노래한다. 이 클뤼템네스트라의 장면으로 오페라 "엘렉트라"는 음악 심리상의 절정에 다다른다. 그녀의 입장은 격심하고 조야한 음악으로 통지되는데 엘렉트라와의 대담 장면은 협박적인 흥분 상태를 자아낸다. 논쟁하는 사이 두 여인의 억눌린 악의는 이윽고 공공연한 증오로 상승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슈트라우스의 표현력이 풍부한 관현악단은 이런 모든 과정을 대단히 함축성있게 반주하고 있다. 특히 클뤼템네스트라의 히스테리 증상은 반음적 변화음을 과도하게 사용함으로 상징화하였다. 슈트라우스는 이 클뤼템네스트라의 음악을 세번이나 고쳐 썼는데 이 "무조"인 마령전의 음악을 그는 "모든 음악을 능가하는 음악"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는 이 음악이 그에게도 약간 섬뜩하게 들렸다고 한다. 그리고 만일 이 음악 작곡할 때 무조의 음악이 다음 세대의 신조가 될 줄 알았다면 아예 이런 비행을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도 했다. 독창자들에 의해 주로 정지된 상태의 장면이 연결되는 이 오페라에서 클뤼템네스트라의 봉헌 행렬 장면은 동작의 요소를 포함하여 대비를 이룬다.

호프만스탈의 이 음산한 희곡에는 네 명의 주요 등장 인물 (두 딸과 어머니 그리고 아들 오레스트)의 특성이 정신 분석학적으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크뤼조테미스의 사랑의 동경만큼 복수하려는 엘렉트라와 오레스트가 보이는 연대감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는데 이런 온화한 감정은 엘렉트라와 클뤼템네스트라의 격한 심리 상태에 대치하고 있다. 혐오, 기품, 사랑, 증오 등 "엘렉트라"에서 슈트라우스는 인간의 모든 감정을 일순하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까지 음악을 통해 전달하였다. 그래서 아주 모험적인 형태의 화성과 아주 단순한 형태의 화성이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사용되었다; 연속적으로 사용된 불협화음으로 정신적인 긴장이나 초조 상태 또는 소름끼치는 장면이 음악으로 그려진 반면 조성에 기반을 둔 "듣기 좋은"소리로 오레스트의 귀향, 엘렉트라와의 감동적인 인식 장면, 크뤼조테미스의 건전한 사랑의 갈망이 표현되는 것이다. 엘렉트라가 잘로메보다 더 미친 상태에 있듯이 전체적으로 보아 "엘렉트라"의 음악은 "잘로메"의 음악보다 훨씬 더 혹독하며 웅대하다. 관현악단도 "잘로메"때 보다 상당히 확장되어 115명의 연주자가 참가한다. 더 야생적이며 선동적인 인상을 받는 청중은 그래서 처음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도 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호프만스탈과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는 고전 작품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도 하겠다. 왜냐하면 사건의 현장이나 시간 그리고 신화 자체가 여기서 그리 결정적인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인간의 정신으로, 이런 의미에서 이 오페라가 꼭 그리스 신전에서만 상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호프만스탈은 작품의 본질을 아래와 같이 보았다; " 엘렉트라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행위과 행위에 대한 관계이다: 한 범죄는 또 다른 흉행으로 배상되고 있다 -- 그리고 이런 죄갚음은 한 사람에게 과해져 있는데 그 때문에 이 사람은 이중으로 멸망해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이므로 벌써 그런 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 끔찍한 사건들을, 오직 열렬하게 독백하며 방관해야만 하는 인물 엘렉트라는 좌절하고 마는 것이다.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을 오페라 각본으로 추천한 호프만스탈과 마찬가지로 시대 풍조에 예민한 감각을 가진 예술가였다: 당시 프로이드의 심층 심리학에서 조사되어 분석된 변태적인 정신 상태를 그는 새로운 음악으로 적합하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오레스트에 의해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에 대한 이중 살인이 끝나자 엘렉트라는 황홀경에 빠져 춤추기 시작한다. 절정에 다달아 갑작스런 죽음으로 중단되는 이 환희의 춤은 찬미이자 잘로메의 입맞춤과 사망처럼 사랑의 죽음이다. 또 한편으로 이런 종말은 엘렉트라의 한계를 실증하고 있다; 그녀의 삶은 보복을 통하여 완성된 것이다. 음악 비극으로 "엘렉트라"는 아마도 오페라 문헌 중 가장 격심한 증오의 노래를 포함한다고 하겠다. 엘렉트라의 이런 심정는 모든 외적인 자극없이 활활 불타올라야 하며, 그치지 않고 청중을 매혹하며 전율케 하고 또한 감탄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잘로메처럼 엘렉트라역은 몇몇 역량있는 여가수에게 유보되어 있다. 교향악오페라인 "엘렉트라"의 상연 시간은 "잘로메"처럼 1시간 45분에 지나지 않아 한 저녁을 꽉 채우는 극장 작품이 아니다. 그러나 슈트라우스는 이 농도 짙은 두 작품이 상연될 때 같은 조건을 세웠다. 결코 다른 작품으로 "남은 저녁 시간"이 보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위의 음산하고 침침한 두 운명 비극을 연이어 작곡한 뒤 그는 곧 화사하고 생명욕과 향락이 넘치는 희극 "장미기사"에 음악을 붙였다. 극단적인 음악 양식의 돌변을 수행해 낸 것이다.

5.  "장미기사" op. 59

삼막의 음악을 위한 희극

각본: 후고 폰 호프만스탈

초연: 1911년 1월 26일 드레스덴 (궁정극장)

등장인물

베르덴베르크 부인(소프라노, 원수 부인이자 후작 부인), 레르헤나우의 남작 옥스 (베이스), 백작 옥타비안 로프라노 (메쪼 소프라노, 캉캉이라고 불림), 폰 파니날 (바리톤, 부자로 얼마 전에 귀족 칭호를 얻었음), 조피 (소프라노, 그의 딸), 시녀장 마리안네 라이트메쩌린 (소프라노, 파니날 집의 가사 관리인), 발짜키와 아니나 (테노와 알토, 이탈리아 음모가들), 경감 (베이스), 파니날 집의 청지기 (테노), 가수 (테노), 공증인 (베이스), 여관집 주인 (테노), 원수 부인집의 청지기 (테노), 원수 부인의 마부, 남작 옥스의 마부,세 명의 귀족 고아 (소프라노, 알토), 한 명의 귀족 과부, 미용사, 모자 제조인, 동물 상인, 네 명의 어린이, 네 명의 급사, 흑인 동자, 하인들과 기타 등등.

시간과 장소; 1740년경 빈 (마리아 테레지아 집정 초기)

상연 시간; 약 3 1/2 시간

내용

일막; 후작 부인의 침실

청년 옥타비안 (17세로 크빈-크빈으로 불림)은 중년의 원수 부인이며 후작 부인 베르덴베르크를 정열적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언젠가는 옥타비안을 젊은 여인에게 내어 주어야 할 것이라는 걱정에 우울해 질 때가 많다. 이상 야릇하게도 그녀 자신이 이런 운명으로 향하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어느 아침 침실에서 옥타비안과 조반을 하고 있는데 사촌인 레르헤나우의 남작 옥스가 들이닥쳤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옥타비안은 병풍 뒤로 가 그녀의 옷으로 변장하여 시녀 "마리안들"이 되어 나가려 하나 옥스가 방으로 들어 오며 그녀를 보고는 나가지 못하게 눈을 떼지 않는다. 많은 부채를 지게 된 시골 귀족 옥스는 재산이 많고 최근 귀족의 신분을 부여받은 군납업자 파니날의 딸 조피와 결혼하려고 빈으로 올라 온 것이다. 그는 사촌 자매에게 임박한 약혼식때 빈의 귀족들의 전통에 따라 약혼녀에게 은장미를 전달할 품위있는 구혼자를 골라 달라고 간청한다. 일시적인 기분에 잡혀 후작 부인은 옥타비안 로프라노 백작 이름을 명명하며 메달의 초상화까지 보여 준다. 옥스는 처음 마리안들과 백작의 모습이 너무 비슷하여 깜짝 놀라지만 옥타비안의 아버지가 호색가가 아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싱긋싱긋 웃는다. 이윽고 마리안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청원자들에게 안으로 들어 오라는 부인의 전갈을 보내며 방에서 빠져 나온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와 간청하는 사이 후작 부인은 머리를 빗게 한다. 이런 사이 옥스는 혼인 계약서를 그녀의 공증인과 상세히 상의를 한다. 그는 신부의 아버지가 결혼 다음 날 신부에게 주는 신랑의 선물을 수여한다는 약관을 넣고자 한다. 공증인이 그런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하자 주먹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그렇다면 규정들을 알맞게 해석해서 가능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며 호통을 친다. 후작 부인은 교회에 가려고 하니 이제 모두 퇴장해 달라고 한다. 혼자 남은 부인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상기한다. 조피처럼 그녀도 계획된 결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세간의 흐름과 노화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생각으로 우울해 진다. 옥타비안이 같이 산책하려고 돌아와 그의 사랑을 맹세하지만 그녀의 기분은 바뀔 줄 모른다. 옥타비안이 떠나간 뒤 그녀는 작별의 입맞춤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머리에 떠올라 후회한다. 하인을 곧 뒤따라 보냈지만 옥타비안은 이미 말을 타고 가버려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옥스에게서 받은 은장미가 들은 상자를 한 흑인 동자에게 주며 옥타비안 로프라노 백작에게 전해 주라고 한다.

이막; 파니날의 응접실

파니날은 딸을 귀족 신분의 옥스와 결혼시킬 수 있게 되어 무한히 기뻐하며 조피는 상대자와의 첫 대면을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다. 먼저 신랑이 신부의 집에 들어 오기 전 사랑의 표시로 보내는 은장미를 전하려 흰색과 은색으로 옷을 차려 입은 옥타비안이 들어온다. 수행원들이 나가자 조피, 옥타비안과 시녀장이 자리를 잡고 앉아 담소를 나누며 서로 호감을 갖게 된다. 마침내 남작 옥스가 파니날의 안내로 방으로 들어 온다. 조피는 인사하면서 단번에 그의 천박성과 외설적인 말투에 충격을 받는다. 결혼 계약서에 서명하기 위해 옥스가 공증인과 옆방으로 들어 가고 옥스의 하인들이 파니날의 시녀들을 집적거리자 시녀장도 중재하러 나간다. 이래서 조피와 옥타비안 둘만 남게 되자 조피는 옥타비안에게 옥스와 절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고백한다. 아니나와 발짜키는 이 담화를 몰래 엿듣고는 남작과 조피의 아버지를 소리쳐 부른다. 조피는 이제 그녀의 뜻을 옥스에게 또렷하게 말하지만 별로 중대시 되지 않자 결국 옥타비안이 조피의 말을 역설한다. 그러나 무분별하고 돈 많은 신부만을 찾는 옥스는 일부러 못 들은 체 한다. 그리고 조피를 서명시키려 옆방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자 옥타비안은 단도를 꺼내며 그들 사이에 끼어 든다. 비겁하게 물러 서려던 옥스가 팔에 약간의 상처를 입자 모두 그를 돕는다. 파니날은 대단히 흥분하여 딸에게 옥스와 결혼하지 않으면 수도원으로 보내겠다고 위협한다. 이때 옥타비안은 매력적인 조피에게 연정을 느끼며 그녀를 돕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그동안 조피쪽으로 편을 바꾼 발짜키와 아니나와 같이 난봉군 옥스를 모든 사람, 특히 파니날 앞에서 가면을 벗길 계획을 세운다. 즉 그는 시녀 마리안들이 되어 다음날 저녁 밀회의 기회를 약속하는 편지를 아니나를 통해 옥스에게 전하게 한다. 옥스는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삼막; 빈 근처 한 여관의 별실

삼막은 익살극처럼 시작한다. 발짜키와 아니나는 여관 주인과 함께 남작의 밀회를 위해 갖은 준비를 갖추었다; 식탁보를 씌우고 포도주를 마련했으며 촛불을 켜 분위기를 살리고 옆방에서는 은은히 음악이 흘러 나오도록 하였다. 복면한 남자들은 커튼 뒤나 문에 숨어 기다린다. 이윽고 옥스는 한 팔은 멜빵 붕대에 걸고 다른 한 팔엔 마리안들을 끼고 희색이 만면하여 방으로 들어 온다. 그는 마리안들의 얼굴이 옥타비안을 상기하게 하여 좀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상의와 가면을 벗고 안락하게 한 다음 마리안들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마리안들이 여기 저기 사람 머리가 보이자 유령이 나타난 것 아니냐면서 울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창문에서는 길게 베일을 쓴 여인 (변장한 아니나)이 나타나 옥스를 보자 자기 남편이라고 하고 네명의 아이들은 아빠 아빠하며 소리를 지른다. 옥스는 정신 병원에 와 있다고 생각하며 경찰을 부른다. 경감이 옥스까지 심문하려 하자 그는 마리안들을 자신의 신부, 파니날의 딸이라고 한다. 이때 옥타비안이 급히 오게 한 파니날과 조피가 나타난다. 한 밤중에 장래 사위될 사람을 곤경에서 구해 내려고 온 파니날은 사태를 파악하고는 거의 실신 상태가 되어 조피에 의해 옆방으로 인도된다. 옥타비안은 곧 수건과 소녀 복장을 벗어 버린다. 옥스는 옥타비안의 모습에 놀라 눈을 비비고 있는데 뜻밖에도 후작 부인이 나타난다. 옥스의 하인이 도와달라고 연락을 하였던 것이다. 부인은 이 모든 일이 한 희극에 불과하다며 경감을 돌려 보낸다. 옥스가 마리안들과 옥타비안이 한 인물임을 깨닫고는 후작 부인과의 관계를 상상하기 시작하자 후작 부인은 신사라면 침묵해야 한다며 경고한다. 더우기 그는 이제 경기에서 패한 사람으로 빈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조피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약혼이 취소되었음을 알린다. 옥스가 떠나려 하자 여관 주인은 비싼 계산서를 들고 나오고 아니나와 우는 아이들, 팁을 달라고 급사와 음악가가 몰려 들어 떠들썩하다. 그리고는 정적이 흐르며 옥타비안이 후작 부인과 조피 사이에 서서 당혹해 하자 체념한 후작 부인은 그를 조피에게로 인도한다. 그리고 이런 해결로 위로 받은 파니날은 그녀를 마차까지 동반한다. 방에 남겨진 옥타비안과 조피는 잠시 후 손에 손을 잡고 방을 떠난다. 잠시 후 불꺼진 방으로 흑인 동자가 촛불을 들고 들어와 조피가 떨어뜨린 손수건을 집어 올린 다음 총총 걸음으로 걸어 나간다.

작품 설명

음악을 위한 "희극"이라는 표제가 말해 주듯이 "장미기사"는 한 리브레토를 넘어서 연극으로 상연하여도 완전한 가치를 지닐 작품이다. 호프만스탈은 이 작품에 나오는 여러 인물과 이름을 실제로 빈의 궁내 대신 요한 요제프 케벤휠러-메취 (Johann-Joseph Khevenhueller-Metsch) 후작의 귀족 연대기 (1742-49)에서 인용하였다; 로프라노 백작, 레르헤나우, 베르덴베르크, 파니날 등등. 그러나 사건이나 등장 인물의 특징은 호프만스탈의 독창성으로 완성되어 진 것이다. 그는 고안해 낸 세부 사항으로 극의 배경을 윤택하게 하였고 등장하는 인물에게 여러 가지 다른 어법을 쓰게 하여 그들의 특성 묘사를 꾀하였다. 그러나 이런 어법들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장미기사는 사실 호프만스탈의 최대의 발명품으로 신랑이 신부 집에 들어 가기 전 신부될 사람에게 구혼자를 보내 은장미를 전달하게 하는 귀족들의 전통은 빈에 존재하지 않았다.

"장미기사"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게 된 것은 주요 등장 인물들이 따뜻한 인간미를 풍기기 때문이다. 다혈의 기괴한 시골 귀족 옥스는 호색가며 지참금을 노리는 신랑감으로 때로는 관중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한 형으로 그려지고, 대립되는 역인 원수 부인을 창조함으로 호프만스탈은 보기 드문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세상 물정에 밝고 총명하며 예지하는 실망을 기품으로 감추는 이 여인은 거울 앞에서 노쇠에 대해 사색한다 (일막 끝의 독백); "시간이란 기묘한 것이야."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 "조물주께서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시는지?", "그리고 그가 꼭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해야만 한다면 왜 내가 또렷한 정신으로 모든 과정을 지켜 보게 하시는지 몰라." 하며 묻는다. 그녀는 자발적으로 그녀보다 젊은 연인 옥타비안을 단념하기로 결정한다. 이로써 이 오페라는 남작 옥스로 인해 벌어지는 민속적인 익살극에 "비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특별한 총체를 이루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비극은 아닌 것이 노화에 대한 독백에서 그녀의 자세는 결코 비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지막한 애수를 느끼게 하는 그녀는 또한 아주 늙어 버린 여인도 아니다. 슈트라우스의 말에 따르면 많아야 32세의 여인인 것이다. (18세기 중반에 빈에서는 이 나이의 여성이 이미 젊은 여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옥타비안은 그녀의 첫번째의 연인이 아니었듯이 마지막 연인도 아닐 것이다. 호프만스탈은 이 원수 부인에게 여러 미덕을 부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관중의 특별한 애호를 받게 하였다. 애교와 유머, 여성의 부드럽고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그녀는 또한 처세에 능하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사랑의 진실한 행운을 경험하지 못했으면서도 연인 옥타비안을 주의깊게 조피에게 안내하여 인간적인 고상함을 느끼게 한다. 옥타비안과 조피가 안성맞춤의 짝인 것은 보자 마자 알 수 있는데 호프만스탈은 정성들여 서로가 서로를 발견하도록 한다. 삼막 끝의 삼중창 (원수 부인, 옥타비안, 조피)은 슈트라우스가 원하여 그의 장례식때 (젊은 게오르크 쏠티의 지휘) 연주되었는데 그가 작곡한 곡 중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고 하겠다.

슈트라우스는 이 오페라에 나오는 여러 인간의 모습,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음악으로 더욱 또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던져서 밝게 울려 퍼지는 듯한 팡파르로 시작되는 서곡은 꽃처럼 피어 나는 듯한 가락과 탐닉하는 음색으로 원숙한 후작 부인과 젊은 옥타비안의 즐거운 사랑을 기술한다. 작은 행진곡으로 흑인 동자의 등장을 알리며 우아한 미뉴에트같은 월츠는 아침 식사시간의 명랑한 한담을 반주한다. 그 다음으로 겉치레가 잔뜩하며 무게 있는 행진곡 주제로 훌륭한 신사이려고 노력하는 시골 귀족 옥스의 출현을 알리고 있다. 후작 부인의 접견 시간은 그야말로 한 폭의 풍속화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이익과 감정의 끈을 서로 교묘히 얽고 있다; 세명의 귀족 출신의 고아와 그들의 어머니는 훌쩍 훌쩍 우는 노래를 하며 도와 달라고 하고 부인 모자 제조 여공과 동물 상인은 과대 광고를 한다. 이러는 사이 한 가수는 마음을 녹이는 이탈리아 아리아를 부른다. 이후 후작 부인의 노화에 대한 독백으로 이 오페라는 각별한 분위기에 싸이게 되는 것이다.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는 제 이막에서 장미기사가 등장할 때 연주되는 은장미 동기이다. 푸루트 (3), 독주 바이올린 (3), 하프 그리고 첼레스타의 고음 혼합으로 이루어진 이 울림은 반짝거리는 은장미를 상징하는 청아한 소리로 슈트라우스는 독자적인 색처럼 사용하였다. 이 오페라을 상징하기도 하는 이 동기는 유겐트 양식의 은빛과 장미 무늬에 유추한 음악적인 번역이라고도 하겠다. 이 유겐트 양식은 당시 조형 예술, 건축, 응용 미술 그리고 심지어는 복장에 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반짝이는" 음악은 또한 옥타비안과 조피의 수줍은 첫대화 주위를 맴돌고 있어 젊은 그들이 마치 행복한 꿈 속에 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막의 후반은 옥스가 시작하는 감미로운 월츠 가락이 지배한다; 마리안들과 만날 일을 생각하니 행복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삼막도 끝부분에 감동 깊은 여성 삼중창이 불리기 전까지 월츠가 성황을 이룬다. "장미기사"는 20세기의 가장 매혹적인 음악 희극으로 간주되는데 또한 슈트라우스의 가장 대중적인 오페라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생기 발랄한 가락과 취할 듯한 화성으로 조성 음악으로 복귀하였다. 그래서 당시 현대적인 젊은이들에게 거의 "잘로메"나 "엘렉트라"에 대한 배반으로 여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슈트라우스를 진취적인 성향의 원형으로 보고 (급진적인 쇤베르크도 짧은 기간이었으나 슈트라우스의 신봉자였다.) 그가 유럽 음악을 19세기말의 과열된 낭만 음악에서 구해 내리라는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이제 슈트라우스는 그들에 의해 보수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말았지만 순수한 아름다움과 지나간 시대의 광휘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는 이 작품은 영속적인 가치를 지녀 많은 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장미기사"가 (음악을 위한) 희극 이상임은 위에서 이미 본 바와 같다.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스탈에게도 최종적인 제목 설정은 쉽지 않았다. 여러 요소가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며 얽혀 있기 때문이다. 슈트라우스는 거칠고 우습광스런 옥스를 중심 인물로 보려고 한 반면 호프만스탈에게는 은장미, 옥타비안 그리고 원수 부인이 더 의미 심장하였던 것이다. 초연의 무대장치가인 알프레드 롤러 (Alfred Roller)가 1910년 5월 4일 호프만스탈이 부득이 임시 방편으로 제안한 제목 "장미기사"를 스케치에 써 넣어도 되겠냐고 묻자 슈트라우스는 충동적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장미기사는 정말 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는 옥스가 좋아요. 그러나 어떻게 하겠소. 호프만스탈이 부드럽고 영적인 것을 좋아하니. 그리고 내 아내가 장미기사로 하라고 명령하니 장미기사요. 마귀야 물어 가거라! ".

"장미기사" 다음의 오페라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도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의 바로크 그리고 로코코 정신과 전통에 깊이 관련된 작품이다.

6.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 op. 60 II

개막극을 포함한 일막의 가극

각본: 후고 폰 호프만스탈

초연: 1916년 10월 4일 빈 (궁정극장)

서극의 등장인물

청지기 (나레이터), 음악 교사 (바리톤), 작곡가 (메쪼 소프라노), 테노 가수 (바커스, 테노), 장교 (테노), 무용 교사 (테노), 가발 만드는 사람 (베이스), 하인 (베이스), 체르비네타 (소프라노), 프리마돈나 (아리아드네, 소프라노), 하를레킨 (바리톤), 스카라무치오 (테노), 트루팔딘 (베이스), 브리겔라 (테노).

가극의 등장인물

아리아드네 (소프라노), 바커스 (테노), 물의 요정 (소프라노), 나무의 정령 (알토), 산요정 (소프라노), 개막극에서의 이탈리아의 민속적 익살극에 나오는 다섯 인물 체르비네타, 하를레킨, 스카라무치오, 트루팔딘, 브리겔라.

개막극의 시간과 장소; 18세기 빈, 부유한 백작의 호화 저택

가극의 시간과 장소; 신화 시대의 그리스 낙쏘스섬

상연 시간; 약 2 1/4 시간

서극의 내용

재산 많은 빈의 한 백작은 자신의 호화 저택에서 진수 성찬의 연회를 베푼 다음 손님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도 선사하고 싶어 젊은 작곡가로 하여금 오페라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를 작곡하도록 하였다. 무대 뒤에서 이 작품의 상연을 위한 준비로 한창인데 집 주인은 이런 진지한 오페라가 손님들을 지루하게 할 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 이 오페라가 끝난 다음 계속하여 유명한 무용수며 요염한 체르비네타와 그녀의 희극 배우단이 제공하는 쾌활한 익살극도 보여 주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작곡가는 자기 작품의 가치를 저하시킬 것이라는 추측에 대단히 실망한다; 젊은 그는 아직 극장 주변과 세상의 폭풍을 경험하지 않은 이상주의자로 죽음만을 기다리는 공주 아리아드네에 대한 비극 상연에 연이어 어떻게 익살극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하며 절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 교사는 예술적인 이상과 이 이상의 실현 사이에는 언제나 틈, 아니 때때로는 심연이 있기 마련이라며 어쨌든 오늘 저녁의 중요 사건은 그의 오페라가 될 것이라며 위로한다. 체르비네타의 무용교사도 그렇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곧 더 기가 막히는 일이 벌어졌으니 청지기가 백작의 뜻에 따라 진지한 오페라와 익살극이 연속해서가 아니라 동시에 상연되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작곡가는 오페라의 품위를 떨어뜨리느니 차라리 굶는 편이 낫다며 자포 자기하여 작품을 철회하려고 한다. 음악교사의 생각은 그러나 실제적이다; 어떻게든 이 오페라가 상연되면 젊고 가난한 작곡가가 사례비를 받아 여러 달 생계를 유지하게 되고 다시 작곡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무용교사에게 다가가 교섭한다. 이 무용교사에게는 주인의 착상이 그리 이치에 어긋나 보이지 않았다; 적막한 섬만을 보여주는 오페라의 장면은 까다로운 관객에게 그렇지 않아도 매혹적인 구경거리가 되기 어렵고 아리아드네의 기나긴 가창은 가벼운 선율과 춤으로 좀 연화시키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런 동시 상연이 있은 다음 정각 9시에 불꽃이 올려져야 하므로 시간이 절박하여 오페라를 단축해야 하였다. 음악교사는 외교술을 피워 테노 가수에게 바커스 역에서 악보하나 빠지지 않지만 프리마돈나의 두 아리아가 삭제된다고 한다. 그리고 프리마돈나에게는 그녀의 소프라노 역은 그대로 남지만 테노부분의 절반이 잘려 나간다고 한다. 이 사이 무용교사는 즉흥적으로 출연해야 하는 체르비네타에게 이 오페라의 내용을 설명한다; 아리아드네 공주는 테조이스와 같이 도주하였는데 그녀에게 곧 싫증을 느낀 테조이스는 그녀를 낙쏘스 섬에 남겨 두고 떠나 버렸다. 맡은 역처럼 변덕스럽고 매혹적인 체르비네타에게 이해가 잘 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리아드네가 기다리다 지쳐서 죽음만을 고대하고 있다고 하자 체르비네타는 동의하지 않는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애인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란다. 이 말은 들은 작곡가는 흥분하여 끼어든다. "아니오! 아리아드네는 평생 오로지 한 남자에게만 속하는 여인이라오." 체르비네타는 이런 터무니 없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작곡가가 마음에 들어 크게 항변하지 않는다. 작곡가는 계속 설명하길 이런 아리아드네에게 죽음의 사자 대신 청년 바커스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체르비네타는 그녀가 벌써 그럴 줄 알고 있지 않았냐며 의기 양양해 한다; 새 애인이 등장한 거라구요. 그러나 작곡가는 아리아드네가 그를 죽음의 신으로 간주하기에 그의 배를 타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 전혀 다른 두 세계 -- 아리아드네와 체르비네타의 세계 -- 가 여기 펼쳐진 것이다. 모든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체르비네타와 정반대인 아리아드네 그리고 작곡가의 사이를 잇는 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체르비네타는 그러나 작곡가를 위해 그 말의 깊은 뜻을 이해하는 체한다. 그리고 풍자와 진심 사이를 왔다 갔다하는 과시적인 언어로 그녀는 작곡가에게 용기를 불어 넣는다. 이윽고 그가 모든 것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고 음악 교사를 향하여 "성스런 음악 "에 대해 비장하고 열광적인 찬가를 보낸다. 그러나 그는 곧 거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체르비네타가 상연을 위해 휘파람으로 동료들을 불러 냈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보자 작곡가는 다시 고통스러워졌다. 작품을 도로 회수하고 싶었다. 이 추한 세상에서 도주해 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런 개막극에 이어 극 중의 극인 오페라가 상연되기 시작한다. 관중은 부자 집에 초대된 손님으로 이 오페라를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가극의 내용

아리아드네는 테조이스 (아테네의 영웅)에게 버림받고 황량한 섬에 남아 슬퍼하고 있다. 물, 나무 그리고 산의 요정들은 슬픈 노래로 그녀에 대한 동정심을 나타낸다. 테조이스와의 사랑을 기억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그녀는 이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호송하는 신의 사절 헤르메스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때 희극 배우들이 나타나 춤과 노래로 그녀를 위로하고 마음 전환을 하도록 하지만 그들에게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드디어 체르비네타는 그들을 내보내고 대담한 콜로라투라 아리아로 온갖 종류의 조언을 하며 가벼운 인생관을 갖도록 애쓰지만 이것도 헛수고였다. 죽음만을 생각하는 아리아드네는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희극 배우들은 계속 시시덕거리다가는 무대에서 퇴장한다; 그들은 서로 체르비네타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는데 결국 하를레킨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게 된다. 이때 요정들이 청년 바커스가 탄 배 한 척이 다가온다고 알린다. 그는 제우스와 제멜레의 아들인데 제멜레가 그를 낳은 후 제우스의 빛을 받고는 재가 되어 버려서 이 요정들에 의해 양육되었다. 바커스는 방금 첫번째 모험 여행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돌아 온 것이다; 즉 베틀에 앉아 있는 마녀 치르체가 그녀에게 오는 낯선 사람들마다 식사에 초대한 뒤 마술지팡이를 써서 동물로 변하게 하였는데 바커스에게는 그녀의 요술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얼굴에 웃음을 함빡 띠고 섬에 나타났다. 바커스는 처음에 동굴에서 나온 아리아드네를 보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했으나 혹시 치르체와 같은 마녀가 아닐까 하며 의심스러워 한다. 반면 아리아드네는 그를 기다리던 죽음의 사자로 추측하여 자기를 영원한 망각의 나라로 데려다 달라고 간청한다. 이 순간 반신 바커스는 처음으로 자기의 진정한 과업이 생명과 사랑을 증여하는데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아리아드네를 끌어 안자 결국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죽음만을 갈망하던 아리아드네에게 삶에 대한 의욕과 사랑을 새로 불러 일으켰고 그는 바커스 신이 되었다. 체르비네타는 무대 뒤에서 긴장하여 바라보다가는 승리에 차 고개를 끄덕한다. 그녀가 부른 아리아의 내용이 현실이 되었지 않은가 말이다. 포도잎과 담쟁이덩굴로 만들어진 천개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아리아드네와 버커스를 덮는다.

작품 설명

위와 같이 몇 문장으로 요약되는 오페라의 외면적인 줄거리가 시작되기 전의 사건을 상기해 보자. 그리이스 신화에 따르면 아테네의 왕 에고이스의 아들 테조이스 (다른 출전에는 해양신 포세이돈이 그의 아버지라고도 한다)는 아테네 사람들을 미노스 왕에 바치는 공세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크레타섬으로 갔다. 미노스는 에게 해 주변의 본토와 섬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테네의 어린 아이들은 미로에 있는 수소머리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에게 던져져 희생물이 되어야 했다. 그는 이 미로에 들어가 이 괴물을 죽이고는 공주 아리아드네가 준 붉은 실의 도움으로 길을 찾아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후 테조이스는 아리아드네와 함께 아테네로 향한다. 그러나 낙쏘스섬에서 다달아 휴식하던 중, 아리아드네가 잠자는 사이 테조이스는 명예롭지않게 이유도 밝히지 않고 혼자서 아테네로 가버렸다. 호프만스탈이 그리이스 신화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창작한 이 오페라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테조이스가 왜 아리아드네를 남겨 두고 떠나갔을까에 대한 추측은 여러 가지다. 위험한 바다 폭풍우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려고, 아니면 테조이스가 아리아드네와 항해를 계속할 경우 크레타섬에 있는 그녀의 상속 재산이 모두 없어지므로, 아니면 자기 가족에 대항하여 행동한 아리아드네가 행복해져서는 안되므로 그녀의 가족이 테조이스에게 혼자 떠나라고 강요했다는 것이다. 즉 테조이스가 죽인 미노타우로스는 다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였던 것이다. (미노스의 부인이자 헬리오스의 딸인 파지페의 아들이 바로 미노타우로스였다. 그녀는 이 아들을 미로를 고안한 다델루스가 그녀를 위해 만든 나무로 된 소 안에 들어가 하얀 수소로부터 잉태하여 낳았다. 너무 사나워 그는 이 미로 속에서 서식해야 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테조이스가 불구대천의 적인 미노스의 딸과 아테네에 나타나길 원치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아리아드네의 도움없이 미노타우루스를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을 언젠가는 인정해야 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아버지와 협정하길 그의 배가 아테네의 시계에 다달으면 크레타섬에서의 성공을 알리는 표시로 검은 돛을 흰 돛으로 교환하기로 했으나 잊어버리고 (왜 그가 이 약속을 잊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검은 돛을 단 채 계속 항해하였다는 것이다. 에고이스는 심히 낙담하여 아크로폴리스에서 뛰어내려 죽고 그 결과 아테네에 도착한 테조이스는 왕이 된 것이다. 비밀을 아는 아리아드네도 왕이던 아버지도 존재하지 않아 그는 정말로 전제 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리아드네는 테조이스에게 삽화적인 여인이었을 뿐이었다.

호프만스탈의 테조이스는 신의 지시로 아리아드네를 떠났다. 한 신화에 의하면 주신 바커스는 테조이스 꿈에 나타나 아리아드네를 요구하였다. 여인을 놓고 신과 다툰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므로 테조이스는 그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신은 많이 묻지 않고 차원 높은 법으로 실행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운이 신들의 눈에 띠지 않는 동안에만 기회를 갖는 법이다. 더우기 바커스는 아리아드네가 테조이스를 알게 되기 전 그녀의 연인이었다. 호프만스탈은 아리아드네와 바커스의 만남에서 불가사이하고 신비한 변형을 본 것이다. 그는 1911년 7월 중순 슈트라우스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것은 간단하나 엄청난 생의 문제, 즉 정조라는 문제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잃은 것에 집착하고 영구히 죽을 때까지 인내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살아가고, 극복하고, 변화하고, 심령의 총체를 포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변화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인간으로 머물러 기억력이 없는 동물로 침강하지 않을 것이가. ... 아리아드네는 오로지 한 남자의 아내거나 애인일 수 있었고 오직 한 남자의 유가족이며, 버림받은 여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그녀를 위해서도 남겨져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기적, 신. 그녀는 죽음으로 간주하여 신에게 몸을 바칩니다: 바커스 신은 죽음이자 동시에 생명인데 이런 그의 고유한 천성의 엄청난 깊이를 그녀에게 드러내어서는 그녀 자신을 요술장이, 작고 불쌍한 아리아드네를 변하게 했던 바로 이 마술사로 만들었고, 이 세상에 있는 그녀에게 내세를 불러내어, 그녀를 보존하기고 하고 또한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 간단히 테조이스의 식어 버린 사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테조이스와 아리아드네가 크레타섬에서 떠날 때 여러 다른 여인들도 동반하였기 때문이다; 유모와 요정들 외에 아리아드네의 자매 페드라와 에글레. 태양의 딸이 어머니인 이 세 자매들 이름의 뜻을 자세히 음미하면 테조이스의 아리아드네에 대한 사랑에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페드라는 "반짝이는"을 뜻하며 에글레는 "밝은" 아리아드네는 "아주 맑은", "아주 성스런"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아리아드네의 다른 이름인 아리델라는 "그후, 장래에 보이는" 이라는 뜻을 포함한다. 아리아드네는 이들 중 제일 유명한 딸이다. 테조이스를 도운 그녀는 빛을 방사할 뿐만 아니라 진지하고, 신성하고, 의무나 고귀한 과업에도 공모한 것이다. 이런 그녀는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너무 엄격하여 테조이스에게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밝은"에글레를 사랑하기 위해 아리아드네를 떠난 것은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에글레의 면전에서 인생은 더 수월하고 사랑도 덜 강요적이다. 큰 구출 작업을 위해 테조이스는 아리아드네가 필요하였다. 예견할 수 없고 거친 미로타우루스를 도태하는 일에는 그녀만이 적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후 이런 그녀가 나뉘지 않은 사랑, 전적인 정절, 단호한 공동성을 원할 때 테조이스는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는 신성하거나 순수한 인간이 아니었다. 다만 모험가로 변화와 교체를 원할 뿐이었다. 또한 결혼 생활 중 극적인 사건도 추문도 해명도 원하지 않았기에 비겁하게도 밤에 몰래 안락을 좋아하고 경쾌한 에글레와 낙쏘스섬을 떠난 것이다. 아리아드네에게 그는 너무 경솔하고 가볍다. 결국 어느 지상 사람이고 그녀에게는 너무 약하다.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존재는 신 뿐이다. 그리고 이대로 바커스가 나타난 것이다.

호프만스탈의 작품에서 아리아드네를 동반하는 인물은 체르비네타이다. 여기서 그녀는 에글레같이 무언의 여인이 아니라 언어화 된 신화의 가볍고 경박한 여인이다. 아리아드네가 흩뜨려지고 부서져서 한 남자만을 기다리고 순결함을 동경하고 있는 동안 체르비네타는 인생의 고유한 수수께끼를 예고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불가해한 심장이 뛰고 있어서 변화의 해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지만 한 사랑에서 다른 사랑으로, 어떤 행복감에서 또 다른 행복감으로 범주하고 있는 것이다. 경솔함이나 야비한 배반이 아니라 집착하면 실패자가 된다는 경험이 우리를 이렇게 행동하도록 한다. 어쩔 도리가 없다는 사실을 납득해야 한다. 이런 중대한 통지를 하는 체르비네타가 이 오페라에서 특별한 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원래 그녀의 역은 오페라의 전성기인 17, 18세기의 작품에서 제 2의 여가수 즉 시녀의 역에 해당하고 사회 신분으로 보면 더 낮아 오페라 부파의 하녀 위계에 놓여 있지만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에서 이 성부를 훨씬 지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게 맡겨졌다. 연속되는 트레몰로와 c'- d'''의 음역 그리고 벨칸토 창법도 소화해 내야하는 이 역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위해 씌여진 역할 중에서도 아주 어려운 역할에 속한다.

가극의 주요 등장 인물들이 가면이나 의상없이 말하자면 사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서극은 오페라 부파와 오페라 세리아가 특별히 결합된 가극의 토대를 굳히며 안내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주로 서창으로 진행되는데 자서적적인 성향을 띠는 작곡가 역은 각별한 취급을 받아 청소년적이며 활달하게 들리는 가락으로 대변된다. 이 신선한 작곡가의 동기는 개막극이 진행되는 동안 주테마로서 여러 번 변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실제의 오페라는 아리아드네의 고통, 영적인 상심, 당혹등을 묘사하는 서곡으로 시작한다. 이 서곡의 주제들은 아리아드네의 구슬픈 독백에 다시 사용되고 있다. 극이 진행되며 등장하는 죽음의 동기, 사랑의 동기 등으로 비장한 이 음악극에 오페라 부파의 익살스럽고 반어적인 작은 세계가 대립하는데 부분적으로 두 세계가 서로 교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희극배우들이 늘 쾌활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위로를 받을 수 없어 우는 여인이 머물고 있는 고독한 섬은 그들에게 서먹 서먹한 세계라 조심스런 행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익살극의 등장 인물들은 분방한 홍소보다는 도리어 기품이 높은 진지성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리아드네를 위안하려는 희극배우들은 또한 슬픈 배우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까지 쓰던 거대한 관현악단은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에서 중지되고 바로 전 작품인 "장미기사"의 음향 도취에서도 멀리 떨어져 슈트라우스는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로 그의 오페라 양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 음악은 모차르트 음악을 위한 관현악단 규모인 36명의 실내 앙상블이 연주하여 맑고 투명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글자 그대로 실내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뒤에 설명이 되겠지만 본디 몰리에르 작품에 근거를 둔 이 오페라에서 슈트라우스는 이런 틀의 분위기에 맞추려는 노력으로 바로크 오페라 형식을 채용하였다. 현대적 어법의 화성에도 불구하고 번호붙은 완결된 성악곡들과 체르비네타 장면에서 기술적으로 어렵고 화려한 바로크 아리아는 이것의 증거이다. 특별히 관현악단에 있어 콘티누오 악기 (피아노, 하르모니움, 하프)를 넣은 협주곡적인 솔로-투티 양식의 사용을 들 수 있다. 감상 준비가 잘 안 된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오페라 세리아와 오페라 부파의 요소외에 이렇게 여러 형태와 표현방식이 뒤섞여 인용되었다는데 있다; 바로크 풍의 아리아드네의 비가, 부파-앙상블의 유쾌하고 단순한 가락이 있는가 하면 바그너의 낭만적인 표현법을 상기하게 하는 아리아드네- 바커스의 사랑의 이중창을 듣게 되고 또한 벨리니나 도니체티를 생각나게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이 작품의 현대성은 그러나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즉 슈트라우스가 어떤 새로운 음악 어법을 창조해서가 아니라 특정 양식을 인용함으로써 과거의 음악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정조의 문제, 고전적인 소재, 르네상스의 희극, 빈을 배경으로 하는 점, 꿈과 현실 등이 함께 결합된 이 작품은 일반 대중을 위한 가극이라기 보다는 알아볼 줄 아는 사람들에게 참된 즐거움이 되는 작품이다. 슈트라우스는 생전에 그리이스 낙쏘스 섬의 명예 시민이 되었다.

이 오페라의 발생사는 좀 복잡하다. 오늘날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라는 제목으로 연주되는 위에 서술된 작품은 개정판으로 첫번째로 작곡된 오페라 (op. 60 I)는 슈투트가르트 (이제까지 슈트라우스의 오페라가 초연되던 드레스덴 극장은 친밀한 분위기를 요하는 이 작품에 걸맞지 않게 크다고 여겨 당시 새로 지어진 슈투트가르트 궁정 극장의 "작은 집"에서 상연하기로 결정함)에서 1912년 10월 25일 작곡가 지휘로 초연되었고 몰리에르의 연극 "평민귀족"이 상연된 다음 연이어 연주되었다.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스탈은 "장미기사"의 초연이 끝나자 마자 이때 큰 도움을 준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를 위해 -- 말하자면 고맙다는 표시로 그의 연출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 특별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마침내 실내악을 위한 아주 작은 오페라를 만들어 라인하르트의 연극물에 끼워 상연하게 한다는 고안을 하게 되었다. 호프만스탈은 1911년 3월 슈트라우스에게 30분 짜리 오페라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의 각본을 머리 속에서 완성하였다고 알렸다. 5월에 그는 슈트라우스에게 (라인하르트가 좋아하는 작가) 몰리에르 (Jean Baptiste Molière 1622-1673)의 "평민귀족"을 번안한다는 계획을 전했다. 오막짜리 이 작품은 이막으로 요약되었고 18세기의 의상을 입은 영웅--신화적인 인물들과 이탈리아의 민속적 익살극 (Commedia dell'arte)의 인물들이 섞인 오페라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는 원작품의 연회 장면 다음 무용극이 나오는 부분에 손님들을 위한 오락음악으로 상연되어 전 작품을 마감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슈트라우스는 연극을 위한 서곡, 연극에 나오는 춤 장면을 위한 음악과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연극과 오페라가 잇달아 상연되는 이 어중간한 형태의 작품은 슈투트가르트 초연에서 너무 긴 작품 (전날 총연습 때 거의 5 시간이나 걸려 곧 줄였음에도 약 4 시간이 걸렸음)으로 실증되었다. 더구나 연극관람자들은 오페라를 들으려 하지 않고 또 오페라 관중은 연극을 보려 하지 않는 경향이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작품은 "문화적인 몰이해"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슈투트가르트 판 (op. 60 I)이 이미 여러 극장 (뮌헨, 베를린 등지)에서 순조롭게 무대에 올려진 후였지만 호프만스탈과 슈트라우스는 연극 부분과 오페라 부분을 분리시키기로 작정하였다. 슈트라우스의 제안으로 호프만스탈은 서막을 새로 계획하여 완성하였고 슈트라우스는 이를 작곡하였다. 오페라의 음악도 약간 수정하여 1916년 6월 20일 그는 프란츠 솰크에 의해 10월 초연된 개정판을 완결하였다.

이들은 라인하르트와 그의 앙상블을 위해 1917년 연극 부분도 고치기로 결정했다. 부분적으로 쟝 밥티스트 륄리 (Jean-Baptiste Lully)의 음악을 수용하여 새로 편곡한 17곡의 극음악이 들어 있는 후고 폰 호프만스탈의 "평민귀족(op. 60 III)"은 베를린에서 1918년 초연되었으나 실패였다. (여기에 물론 오페라 부분은 삭제되었다.) 슈트라우스는 이 17곡의 음악을 오늘날 음악회 프로그램에 자주 볼 수 있는 9 곡의 독자적인 관현악 조곡으로 요약하여 1920년 1월 31일 빈의 프린츠 오이겐 팔레에서 초연 지휘하였다. 이 조곡은 때에 따라서 몰리에르 희극의 내용을 갖은 발레를 위한 음악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7.  "그림자 없는 여인" op. 65

삼막의 가극

각본: 후고 폰 호프만스탈

초연: 1919년 10월 10일 빈 (국립극장)

등장인물

황제 (테노), 황후 (소프라노), 유모(메쪼 소프라노), 유령의 사자 (바리톤), 신전 입구의 감독 (소프라노나 콘트라테노), 한 아름다운 청년의 음성 (테노), 매 목소리 (소프라노), 상부의 목소리 (알토), 염색공 바락 (바리톤이나 베이스), 바락의 아내 (소프라노), 염색공의 형제들 애꾸눈 (베이스), 외팔이 (바리톤), 곱사등 (테노), 여섯 명의 어린이 (3 고음, 3 저음), 시 야경군들 (베이스나 바리톤), 황제의 신하, 어린이, 유령들의 하인, 유령의 음성 (합창단, 어린이 합창단)

시간과 장소; 동화 시대, 동화의 나라

상연 시간; 약 3 1/2 시간

가극의 내용

전사

높은 산에 둘려 있고 검은 물로 싸인 남동쪽의 외딴 섬에서 유령의 왕 카이코바트는 한 여인과 사랑하여 얻은 자기 딸이 사람과 접촉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인간인 그녀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경향을 지녔던 것이다. 이 딸은 유령왕으로 부터 동물로 변할 수 있는 마법의 능력도 부여받았다. 어느 날 그녀가 흰 영양이 되어 숲 속에서 뛰놀고 있을 때 사냥나온 젊은 황제에게 잡히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영양은 황제 앞에서 갑자기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였고 황제는 대번에 그녀에게 반하여 이 유령왕의 딸을 부인으로 맞아 들였다.

일막

그녀는 유모와 함께 정원 정자에 살고 있었다. 황제는 낮에 사냥에 전념하고 밤에는 그녀를 찾았다. 사람과 결혼한 유령왕의 딸은 영계에서는 벗어난 셈이지만 유령계의 법에 따르면 그림자를 던져야, 즉 어머니가 되어서야 완전히 인간 세계에 속하게 된다. 안절부절못하는 카이코바트는 매달 심부름군을 유모에게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다. 심부름군이 열 두번째 왔을 때 사람과 황제를 싫어하며 유령계로 돌아 가고 싶어 하는 유모는 이젠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흡족하여 아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보고를 한다. 일년의 기한이 다 지나가기 삼일 전 황후는 황제가 흰 영양 (자기 자신)을 사냥할 때 돕던 붉은 매를 다시 보게 되었다. 새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던 그녀는 정자 위를 빙빙 돌며 탄성을 지르는 이 매를 통하여 만일 자신이 삼일 안에 (모든 책임과 의무에 묶여진 인간 존재의 상징인) 그림자를 서게 하지 못하면 카이코바트가 규정한 대로 다시 유령계로 돌아 가야 하고 황제는 벌로 돌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남편을 사랑하는 황후는 유모에게 그림자를 조달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인간 세계에서 이런 것을 사정에 따라서는 사 들일 수도 있다고 알고 있는 유모는 가난한 염색공 바락의 아내를 적임자라고 간주하였다. 그녀는 힘든 가사 일과 식객으로 있는 불구자 시동생들의 질시 등으로 결혼 생활에 넌더리가 나 짜증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운명에 불만족한 나머지 부지런하고 선량한 남편을 업신여기며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남편의 염원인 자식을 낳아 주지 않고 있었다.

염색공 바락이 이 날도 부인과 싸우고 밖으로 나가자 황후와 유모는 그 집으로 들어 간다. 황후를 자신의 딸이라고 하면서 유모는 염색공 부인에게 하녀로 삼일간 봉사하겠노라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는 염색공 부인에게 각종 마법을 동원하여 좋은 음식과 장식품과 시녀들이 나오는 쾌적한 생활을 내보였다. 이 좋은 모든 것을 정말 다 소유할 수도 있는데 댓가로 단순히 그림자만 팔면 된다고 하니 욕심에 눈이 어두어진 바락 부인은 그만 동의하고 만다. 잠시 후에 생선이 뭉근히 끓고 있는 프라이 팬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기 아이들의 신음소리를 듣게 되자 곧 후회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주문으로 염색공 부부 침대는 두 개로 갈라진다. 집으로 돌아온 바락은 부인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양순하며 아내를 사랑하는 그는 서서히 그녀의 마음을 전환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밖으로 부터 결혼과 어버이로서의 신분을 찬양하는 시야경군의 노래 소리가 들려 온다.

이막

유모의 심술궂은 놀이에 말려 든 이 부부는 이제 정화의 시험을 받아야 했다. 이튿날 유모는 먼저 아름다운 청년의 환영을 염색공 부인에게 나타나게 하였다; 일찌기 그녀는 이 청년을 만나 감탄한 바가 있었다. 염색공 부인은 남편을 배반하지 않았지만 유모의 어지럽힘으로 결국 간통하였다고 믿게 되었다. 황후는 남의 가정에 불화를 가져다 주며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점점 근심에 젖게 되었다. 이날 저녁 사냥을 마치고 온 황제는 인간 세계에서 돌아오는 자기 부인을 보며 부정하다는 추정이 들어 조회하려다가 포기하지만 절망스러워 숲속으로 뛰쳐 나갔다. 바락은 집에서 변해버린 아내에 대해 불안해 하며 이유를 묻지만 헛수고였다. 황후는 편치 않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는 마음씨 좋은 바락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잠이 들자 그녀는 꿈을 꾸었는데 황제가 매와 같이 묘지가 있는 바위굴에 들어 가는 것이었다. 황제가 청동문을 통과하자 이 문이 뒤로 다시 닫혀 버렸고 매는 슬프게 소리를 질렀다; "황후가 그림자를 서게 하지 못하여 황제는 돌이 되어야만 합니다!" 비명 소리를 지르며 황후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녀는 자기의 탓으로 황제와 바락을 멸망으로 몰아 넣었다는 이중 죄과의 앞박을 받는다.

이런 견디기 어려운 긴박 상태는 결국 바락의 집에서 폭발해 버렸다. 대낮인데 염색 기사의 집이 점점 어두어지니 형제들은 불안해져서 갑자기 소리높이 울었다. 이렇게 화를 품은 상황이 되자 바락의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의 (실제로는 저지르지 않은) 부정과 여자의 임신 능력을 포기하여 자신의 그림자를 팔아 버렸다고 고백하였다. 바락의 형제들이 불을 지피자 정말로 그녀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유모는 성공적으로 일이 마무리되었음에 의기 양양해서 황후에게 빨리 그림자를 낚아 채라고 재촉하였다.) 양순하던 바락은 분격하여 돌연 변하였다. 마력으로 공중으로부터 그의 손에 쥐어진 검으로 그는 이런 치욕을 보복하려 하였다. 공포에 빠져 황후는 사람의 피를 치르고 얻어야 하는 그림자를 거부한다고 하였다. 이러자 돌변하여 순종적인 바락의 부인이 사실은 부정하지 않았다며 남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이와 갚이 남편의 감정을 놀이개로 삼은 일에 대한 죄갚음으로 자신을 죽이라고 하였다. 이때 천둥 번개를 동반하며 쏟아진 홍수로 집이 쓸려가고 땅이 벌어지며 바락과 그의 아내는 따로 따로 구덩이에 빠져 버렸다.

삼막

신비하게도 그 자리에 나타난 나룻배로 유모는 황후를 구출하여 그들은 황후가 지난 밤 꿈 속에서 본 신전 입구에 다달았다. 유모는 한사코 말렸지만 황후는 겁도 없이 문턱을 넘어 섰다. 동시에 한 유령의 목소리는 지하에서 서로 갈망하여 애타게 그리워하는 바락과 그 부인을 위로 불러 냈다. 서로를 찾는 그들이 차례로 지나가며 길을 묻자 유모는 흉악하게도 틀린 방향을 가르켜 준다. 그녀가 신전에 발을 디디려 하자 유령의 사자는 길을 막았고 카이코바트는 직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며 그녀를 (그녀가 싫어하는) 사람의 세계로 처넣었다.

신전 안에서 황후는 남편이 거의 돌이 되어 옥좌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아버지 카이코바트에게 그림자를 간청하였다. 신전 감독의 목소리가 바닥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생명수를 마시라고 교시하였다. 그러면 염색공 부인의 그림자가 그녀의 그림자가 되고 황제는 새 생명을 얻게 될 거라고 하였다. 그러나 황후는 두 인간의 행복을 파괴까지 하면서 자신의 행운과 남편의 생명을 사려 하지 않았다. 이런 사욕없는 양보는 그녀에게 승리의 순간을 가져다 주었다. 갑자기 그녀의 육체는 신전의 둥근 천장을 통과하는 빛으로 또렷한 그림자를 던지게 되었고 황제는 일어나서 이제 진짜로 자기 아내가 된 황후를 껴안을 수 있었다. 밖에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들의 환성이 들렸다. 간주곡이 흐른 뒤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나타난 황제와 황후는 높은 암석 위에서 환희의 노래를 인간들에게 내려 보내며, 하부에 염색공 부부도 행복하게 합쳐져 위를 향하여 노래 불렀다. 여기에 두 세계를 상징적으로 묶는 보이지 않는 합창대의 음악이 합류한다.

작품 설명

"장미기사"가 초연된지 한 달 후 호프만스탈의 메모장에는 벌써 환상극 "그림자 없는 여인"에 대한 구상이 기재되어 있다. 그는 1911년 3월 오페라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의 각본을 머리 속에서는 완성하였다고 알리는 편지에 희미하지만 이 마법 동화의 윤곽을 그려 보였다. 그러나 슈트라우스가 정작 작곡에 들어간 때는 1914년이다. 그 이유로는 먼저 발레 곡 "요제프의 성담"을 완성해야 한 데다가 호프만스탈이 여러 번 개작을 했기 때문이다.

호프만스탈이 이 오페라 각본을 쓸 때 여러 전설권이 섞여 연결된 바그너 작품의 대본을 상세히 연구하여 어느 정도 이 방법에 숙달해 있었다. 그래서 총괄적인 교양을 쌓은 그는 동서양의 많은 동화와 전설 그리고 문학의 요소를 자신의 동화 줄거리에 자유롭게 따다 넣었다. 예를 들자면 상처를 입히는 매, 영양 모습을 한 요정, 돌로 변화하는 것 그리고 프라이 팬에서 끓고 있는 생선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상징하는 것 등은 페르시아나 아라비아의 신화 그리고 천일야화에서 차용한 제재이며 그림자로 임신 능력을 상징화한 것은 북유럽 전설에 뿌리를 둔 것이다. 영혼을 팔아 버리는 것은 기독교의 성도 이야기에 자주 나오는 주제로 그림자를 매매하는 것으로 변화하였으며 마귀 자리에는 괴테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같은 유모가 등장하였다. 작가는 이 각본에서 (여성의 임신 능력 찬미를 도외시한다면) 뜻 깊은 시적 상징을 통해 태고적부터 알려진 윤리적 요구를 주제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행복은 극기를 통해 이루어지며 윤리적인 힘의 부족으로 사악한 원리의 부추김에 빠지면 어쩔 수 없는 힘의 파괴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내용에 기적과 마법이 자주 쓰이고 도깨비들이 등장하여 전사와 상징적인 의미를 모르는 관객은 이 오페라의 줄거리가 몹씨 엉켜져 있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황제는 다른 존재에 대해 폐쇄된 의식의 총체이며 황후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극 전체를 의미한다. 황후에 대한 고착적인 사랑에 빠진 유령계의 유모는 그녀를 보호하지만 끝까지 동반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악을 원하는 그녀는 결국 선을 조달한다. 매는 유령계의 사절인데 또한 예리한 분석 의식을 뜻한다. 비유적으로 채택된 염색공이란 직업은 모두에게 색채, 성격 그리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황제와 대립을 이루는 그 자신은 따뜻한 감정을 구현하고 있다. 네 명의 중심 인물 중 단 한 명으로 바락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갖고 등장한다. 기형의 시동생들은 불완전한 인간의 속성을 상징화한다. 상황 판단에 어둡다는 의미로 볼 때 매와 대립하는 존재이다. 변덕스런 염색공의 젊은 아내는 도덕적인 목표없이 (어머니가 된다는 것) 혼돈 속에서 헤매는 무질서한 동력으로 인간 존재 자체 (그림자)의 상실마저 부를 뻔 하였다. 그러나 건강한 본성 덕택으로 결국 시험에 통과하게 되었다. 야경군들의 목소리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조화를 뜻하는 단 하나의 수단으로 사랑을 찬미하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목소리는 잠재적으로 창조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각본 작가가 직접 모차르트의 "마적"에 비유했듯이 이 오페라에도 서로 상반되는 두 세계가 대결하고 있다; 황제 부부의 지배하는 세계와 염색공 부부의 지배받는 세계. 그리고 이 두 세계는 "마적"의 자라스트로처럼 카이코바트라는 강력한 유령왕의 보호와 세력 아래에 존재한다. 결혼의 임무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어린이를 산출한다는 데 있다고 볼 때 양쪽 부부 다 이런 윤리적인 요구를 채우고 있지 않다. 염색공 부부의 경우 바락의 아내에게 책임이 있고 황제 부부인 경우 남자 편에, 즉 황제의 지나친 자부심과 이기심에 원인이 있다. 그는 사냥군이며 연인일 뿐이었다. 이런 상계와 하계의 병렬외에 두 오페라의 유사성은 여러 이국적인 신화의 차용, 자연현상, 많은 장면의 전환, 여러 가지의 유혹과 시험, 영적 육적 사랑의 교전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차이점은 "마적"의 리브레티스트 쉬카네더 (Emanuel Schickaneder)가 무대 효과를 의식하여 각본 작성시 불합리한 말도 너그럽게 통과시켰지만 호프만스탈의 이 각본은 그가 애초 반주 음악이 따르는 희곡이 될 지도 모르겠다 했듯이 예민하고 섬세한 언어로 씌여져 때때로 일반 관중에게 무리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작곡가와의 공동 작업에 문제와 갈등을 초래하였다; 슈트라우스는 호프만스탈의 연마된 미각을 전적으로 용인하였지만 무대 효과에 대해서는 자신의 천성에 더 신뢰를 보냈던 것이다. 리브레티스트와 작곡가가 충분히 의견 교환을 하며 완성된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 오페라 중 생성 과정이 제일 길다. 세계 제 1 차 대전 중에 완결된 이 오페라는 호프만스탈이 때때로 전시 근무에도 참가해야 했기에 더우기 지연되었다.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을 나중에 "역경에서 태어난 아이" (노작)라고 표현하였다.

"그림자 없는 여인"에서 슈트라우스는 또다시 입체적인 동기로 감탄을 자아냈다. 부정적이고 악을 따르는 유모의 불안한 성격과 내면적인 모순을 뾰죽한 음정 도약으로 반영시켰고, 인간의 테마는 여러 종류의 4도 음정 (보통, 단 4도, 증 4도)을 쌓아 올려 모순투성이인 인간 자체를 보여 주고 있다. 돌로 굳어지는 모습은 진기한 화성의 연속으로, 모험적인 변화화음으로는 무시무시한 상황을 그려 내었다. 반복하는 리듬 위에 기본음에서 안정적인 음정인 4도음와 5도음을 자료로 하여 상향하는 음형은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는 것을 표시하는데 그림자가 생기는 순간에 글라스하르모니카 (물이 담긴 유리 컵의 가장자리를 젖은 손가락으로 문질러 연주함)의 떨리는 소리와 함께 이 모티브가 방향을 바꿔 거꾸로 나타난다.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통해 관객은 차갑고 굳어있은 카이코바트의 영역, 온정이 흐르는 염색공의 집, 감각을 마비시킬 듯이 풍만한 요술의 세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오페라는 "엘렉트라"의 "아가멤논 테마"처럼 이름 카이코바트의 리듬을 그린 동기로 시작하는데 무대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 유령왕이 관련될 때마다 되풀이하여 울린다.

이런 동기들이 대위법적으로 세공되어 음악극의 대화가 이끌어지는 사이 "아리아드네"에서 처럼 서정적이며 대칭적으로 지어진 성악곡 (번호붙은 완결된 성악곡)이 등장한다. 보기로 간단한 화성의 민속적 가락으로 다루어진 염색공 바락의 주제, 시야경군의 노래,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들의 가창을 들 수 있다. 서창 유형의 부분과 옛 오페라의 닫힌 형식의 부분이 유기적으로 묶인 이 오페라에는 "엘렉트라"와 "아리아드네"의 형식과 구조의 원리를 종합하려는 슈트라우스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이행되었다. 또한 유령계의 영웅적인 서창은 인간 아래 세상의 실제적인 담화에 맞서게 하였다.

장면 전환이나 그간에 일어난 일 또 등장 인물의 심적 상태는 많은 교향간주곡을 통해 요약된다. 이 모든 것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작곡가는 그의 오페라 중 제일 거대한 관현악단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음향을 아주 섬세히 분화시켰다. 전체적으로 상계인 영의 세계는 "아리아드네"의 작은 관현악단으로, 이때 특히 저음 악기를 제외하여 자유롭게 떠다니며 투명한 꿈의 영역임을 알린 반면 사건 많고 혼잡한 인간 세계는 대 관현악단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런 두 극단 사이는 여러 세분화된 음향으로 이 두 극단의 사이가 채워져 있는 것이다. 외로운 황제의 독백은 또한 첼로 독주로 선도된다. 변화가 많은 악기 편성으로 이 오페라는 특유하고 유혹적인 음향 세계를 소유한다. 새로운 악기로 글라스하르모니카와 중국의 징을 도입하여 마술이 쓰인 이 작품의 특별성을 설득력 있게 강조하였을 뿐 아니라 인간의 목소리를 관현악단에 참가시켜 청각적인 효과를 증대하였다. 일반적으로 비교하면 남자역의 음악에는 흐르는 듯한 이때까지 슈트라우스 특유의 가락이 유지된 반면 여성역의 음악은 이질적이며 기괴하게 들린다.

합창은 큰 덩어리로가 아니고 "장미기사"에서처럼 개별화시킨 그룹으로 등장하고 있다; 일막에서 마법으로 나와 거울을 들어 보이는 여자 노예들, 이막에서 바락으로부터 먹을 것을 받는 거지 어린이들, 삼막의 여러 시중드는 유령들, 법관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들의 음성. 이 작품에서 슈트라우스는 "엘렉트라"와 "아리아드네"의 합성을 이룬 외에 새로운 형식도 추구하였다. 특별히 극적인 구조가 느슨해진 삼막을 서정적인 구성물로 묶어 대상적이며 구체적인 것으로 부터 초월적인 것을 결정시켰다. 오페라의 마지막 두 장면은 음악극이라기 보다는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교성곡이나 성담곡에 가깝다고 하겠다.

총보는 1917년 여름 완성되었으나 초연은 1919년 10월 10일 빈의 국립극장에서 프란츠 솰크의 지휘로 비로소 이루어졌다. 특별한 무대 시설, 장치, 기술을 요하는 오페라를 전쟁 중 상연하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비용을 충분히 들여 무대 장치를 할 수는 없었으나 빈 필하모니커 관현악단과 유능한 성악가들의 출현 (황후로 마리아 예리짜, 염색공의 아내로 롯테 레만, 유모로 루씨 바이트, 황제로 카를 아가르트 외스트비히, 바락으로 리햐르트 마이르)으로 성황을 이룬 초연이였다. 그러나 배역하기에 간단하지 않은 힘든 성악 성부와 까다로운 무대 장치로 벌써 두 번째 무대인 드레스덴에서 상연에 문제가 많았다. 후에 슈트라우스는 이런 대 작품을 전쟁 직후 작거나 중급의 극장에게 주어 상연하도록 한 것은 실책이었다고 하였다. 일상적인 생활과는 동떨어져 벌어지는 이 추상적 심리극이 오늘날 여러 오페라 극장 레파토리에 포함된 것은 60년대 부터 대 극장이나 축제에서 성공적으로 상연되어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슈트라우스의 제일 중대한 작품이라고도 하는 이 오페라는 위에 열거한 문제 뿐만 아니라 철학적이며 간파하기 어려운 각본을 적절히 번역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독일어권이 아닌 외국 무대에 널리 유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겠다.

8.  "간주곡 " op. 72

교향 간주곡이 섞인 이막의 서민적 희극

각본: 리햐르트 슈트라우스

초연: 1924년 11월 4일 드레스덴 (연극극장)

등장인물

크리스티네 슈토르히 (소프라노), 프란츨, 여덟 살난 아들 (나레이터, 어린이 목소리), 궁정악장 로베르트 슈토르히, 남편 (바리톤), 안나, 시녀 (소프라노), 남작 룸머 (테노), 공증인 (바리톤), 공증인 부인 (소프라노), 로베르트와 스캇놀이 하는 친구들 지휘자 슈트로 (테노), 상공업 고문관 (바리톤) 법률 고문관 (바리톤), 궁정 가수 (베이스), 하녀; 마리, 테레제 (2 나레이터), 레지, 어린 소녀 (소프라노)

시간과 장소; 1920년대 그룬들 호수와 빈

상연 시간; 약 2 1/2 시간

가극의 내용

일막

궁정악장 로베르트 슈토르히는 빈으로 오랜 지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아침 일곱 시 그에 대한 준비로 부산하게 짐을 싸는 동안 그와 부인 크리스티네사이 언쟁이 벌어진다; 살림에 대한 모든 일, 즉 고용인에 대한 문제, 부엌, 집, 정원 돌보는 일, 전화로 해결해야 하는 일, 계산서 지불하기 등을 남편은 아예 일이라고 인정도 하지 않는다고 하자 궁정악장은 예술가로 그리고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항구적으로 생산적인 사고를 해야 하지만 이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위안과 즐거움이 되고 있다며 말대꾸한다. 조반 후에도 격한 말투와 배려하는 말투가 섞인 일상 대화는 계속된다. 이윽고 하녀가 와 자동차가 대기하고 있다고 알린다. 불만족하여 크리스티네가 작별 입맞춤을 거부하자 로베르트는 화가 나서 "참기 어려운 빳빳한 솔"이라 말하며 나간다; 크리스티네는 커튼 뒤에 숨어서 남편이 이별의 인사로 손을 흔들어 보내자 만족하여 바라본다. 그러나 그녀의 언짢은 기분은 이제 가정고용인들에게 퍼부어진다. 오로지 아들이 오늘 어떤 신을 신어야 좋으냐고 묻자 갑자기 아주 부드러운 음조로 바뀐다. 그리고는 안나에게 푸념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고독하기 짝이 없다. 남편은 여행을 떠났거나 집에 있을 때면 늘 책상에 앉아 작업 중이다. 그리고 남편이 여자는 다 바보라는 우월심에서 자기를 위에서 내려다 보며 대하는데 차라리 자기를 난폭하게 취급하는게 더 낫겠다고 한다. 이때 전화가 울린다. 알고 지내는 여인이 스케이트 타러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스케이트장에서 크리스티네는 한 젊은 이와 부딪친다. 룸머라고 불리는 이 청년 남작이 한 친구의 아들임을 알고 크리스티네는 언젠가 집으로 방문하라고 초대한다. 한 음식점에서 무도회가 열리자 크리스티네는 이 청년과 실컷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누었다. 요양으로 이 곳에 와 머물고 있는 이 남작을 돌보겠다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녀는 공증인 집에 깨끗하고 아늑한 방을 자비로 얻고 주고 세세히 신경을 쓴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긴 편지로 친절하고 겸손한 이 청년에 대해 썼다; 남편에게 소홀한 취급을 받아 외롭고 불쌍한 여인인 자기에게 더 좋은 동행자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며 가족에게 별 후원을 받지 못 하는 이 청년을 맡아 돌봐 줄 것을 약속하라고 하였다. 남작은 크리스티네를 방문하여 결산하는 일을 도우며 동정심을 일으키게 한다. 크리스티네와 상대하는 일이 지루해진 그는 결국 편지로 1000 마르크를 빌려 달라고 조른다. 집으로 찾아온 남작에게 크리스티네는 우정을 해칠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언명한다. 이때 하녀가 수취인이 남편으로 된 편지를 전달했다. 구걸하는 편지거나 오페라 각본에 관여한 편지로 생각한 크리스티네는 열어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밋체 마이어라는 여자가 오페라 표를 보내 달라고 하며 늘 그랬듯이 나중에 바아에서 만날 것을 바란다고 쓴 편지였다. 크리스티네는 남작을 곧 돌려 보내고는 전보문을 작성한다; 당신은 밋체 마이어를 압니다! 부정은 증명되었음! 우리는 영원히 이혼하였음! 그리고는 곧 우체국으로 보내고 안나에게 짐을 싸도록 하였다. 크리스티네는 아들의 침대에 걸터 앉아 울면서 미래의 삶에 대해 설명한다; 아빠가 옳지 못한 일을 하여 이젠 엄마하고만 살아야 하며 앞으로는 그를 결코 다시 보지 못하게 될 거라고 밝힌다. 그러니까 아들 프란츨도 엉엉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아빠는 엄마에게 언제나 잘했다며 엄마가 아빠에게 화내고 싸웠다고 했다.

이막

상공업 고문관집에 법률 고문관, 궁정 가수, 지휘자 슈트로가 모여 스캇놀이를 하고 있다. 그들은 스캇 친구 슈토르히의 부인에 대해 대화를 하는데 여러 평가를 내가 다양하다. 이때 슈토르히가 연습을 마치고 들어와 스캇놀이에 끼어 든다. 상공업 고문관이 때때로 크리스티네에 대해 빈정대는 발언을 하자 남들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그녀의 태도를 변호하면서 "거친 껍질로 싸인 아주 부드럽고 수줍은 천성"이라고 하였다. 그때에 슈토르히에게 전보가 전해 진다. 내용에 놀라서 처음에 아연해 있다가는 편지를 소리 내 읽었다. 지휘자 슈트로는 밋체 마이어라는 이름에 주춤하더니 당신도 그녀를 아시오하고 물었다. 궁정악장 슈토르히는 슈트로에게 미체 마이어가 누구냐고 하니까 얼버무렸다. 슈토르히는 일단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작별인사를 한다.

이튿날 아침 크리스티네는 공증인에게 가서 이혼 소송을 제기한다. 처음에 남작 룸머 때문이라고 생각한 공증인은 편지를 보이며 궁정악장 슈토르히에게 책임이 있다니까 (자기가 존경하는 예술가인) 그와 직접 만나 말해 보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하였다. 화가 난 크리스티네는 다른 공증인도 많다며 떠나 버린다. 슈토르히는 크리스티네에게 보낸 전보와 편지의 답장이 없자 절망하여 빈의 프라터 공원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우연히도 그는 슈트로를 만났는데 다음과 같은 자백을 하는 것이었다; 밋체 마이어와 이야기 해보니 그 편지는 자기에게 보낸 것인데 전화 번호부로 주소를 찾을 때 그만 이름 슈트로를 슈토르히와 혼동하였다고 한다. 노한 슈토르히는 당장 크리스티네에게 전보를 치고 밋체 마이어의 싸인을 받아 그녀에게 가서 해명하라고 하였다. 크리스티네는 자비로 룸머 남작을 빈의 밋체 마이어에게 보내 남편이 진짜 그녀의 애인인지 확인하도록 하였다. 짐을 싸느라고 왔다 갔다하는 크리스티네에게 시녀 안나가 와서 조심스럽게 남작이 슈토르히의 사진을 지참하지 않고 떠났음을 알린다. 그러니 그녀가 어떻게 동일 인물임을 판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이 슈토르히의 전보가 도착했다. 처음에 열어 보려고도 하지 않은 그녀는 안나가 여러 번 간청하자 마침내 읽게 하였다. 이름 착오로 생긴 오해라는 내용을 듣고는 아랫 사람과 공모하여 난처함을 모면하려고 한다고 간주한다. 이때 지휘자 슈트로가 등장하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지만 크리스티네는 아무 말도 믿으려 하지 않았고 그 사이 집으로 돌아온 슈토르히가 그녀를 안으려 하자 자신의 조회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냉정히 피한다. 기분이 상해 슈토르히가 방에서 나가는데 남작 룸머가 나타나서 크리스티네에게 사진을 지참하지 않아 큰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고 보고한다. 그러자 크리스티네는 그에게 이름 혼동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한다. 남작은 감각이 없는 표정을 지으며 곧 자리를 뜬다. 이때 슈토르히가 다시 방으로 들어 오며 도데체 이 청년은 누구냐고 물으니, 크리스티네는 그가 1000 마르크 빌려 달랄 때까지 호감을 품고 있었노라고 고백하였다. 슈토르히는 딱하게도 크리스티네에게 일어난 이 작은 재난에 대해 재미있어 하며 그녀에게 친절했던 이 청년을 도울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크리스티네는 드디어 자기의 속감정을 나타내며 사과하였고 슈토르히는 감동하여 그녀를 그러안으니 그들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다시 복귀한 것이다.

작품 설명

작은 돌발 사건이나 우연이 겹쳐 커다란 일로 번져 버린 이 작품의 내용은 베를린 시절 정말 슈트라우스 가정에 일어난 일이었다. 주연 뿐만 아니라 조연의 등장 인물도 그러니까 대부분 실제 인물이다. 슈트라우스 (Strauss 독일어로 타조라는 뜻을 갖음) 자신은 여기서 궁정악장 슈토르히 (Storch 황새라는 뜻을 갖음)가 되어 등장한다. 지휘자 슈트로 (Stroh 짚이라는 뜻을 갖음)는 당시 베를린 오페라 극장에서 슈트라우스 밑에서 일하던 에드문트 폰 슈트라우스 (Edmund von Strauss)이거나 아니면 자주 같이 스캇놀이를 하던 지휘자 요제프 슈트란스키 (Josef Stransky)다. 스캇 놀이 친구들인 상공업고문관, 법률고문관, 성악가도 확인되는 인물이며 아들 프란츠, 평생 충실히 슈트라우스집의 가정사를 돌보던 안나, 그리고 남작 룸머로는 당시 부인 파울리네에게 나타났던 한 젊은 고등 사기군이 원상이 되었다. 호프만스탈은 슈트라우스로부터 이 사건의 각본을 부탁받았으나 자신이 쓰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라며 대신 작가 헤르만 바아르 (Hermann Bahr)를 추천하였다. 그러나 바아르도 곧 이런 일신상의 이야기는 슈트라우스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리하여 그는 첫 오페라 "군트람" 이후 거의 30년이 지나 두 번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오페라의 각본을 직접 썼다. 실제 인물들의 언어가 그대로 인용되고 부분적으로 통속적인 언어가 쓰인 이 대본을 그는 뮌헨의 한 병원에서 체류하는 동안 팔일간에 걸쳐 썼다고 했다.

오랫동안 형이상학적인 소재의 "그림자 없는 여인"을 작곡하면서 공상력와 환상력을 극도로 발휘해야 했던 슈트라우스는 다음 작품으로 정반대의 음악극을 원했다. 그러니까 낭만적인 동화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의 세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벼운 희극에 대해 여러가지 구상을 하다가 본인 가정 생활의 한 단면을 보이는 이 사건을 작품화하게 된 것이다. 자신 외에 다른 것을 작곡하는 작곡가가 어디 있겠느냐는 견해를 옹호하는 그에게 사생활의 공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가정교향곡"의 상대작품으로 "가정오페라"라 부르기도 한다.

이 극의 제목인 "간주곡"은 여러 시점으로 보아 적합하다 하겠다; 그러니까 슈트라우스의 행복하고 오랜 결혼 생활 중의 한 삽화적 사건이 줄거리가 된 데다가 그가 이런 사실적인 희극을 단 한 번 밖에 쓰지 않았는데, 총 15 편의 오페라 중 여덟 번째로 정 가운데에 위치한 막간극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각본 작가 호프만스탈과의 공동 작업 기간 중 중간 휴식이 되기도 하였다.

이 음악극은 바로크 시대부터 오페라의 가사나 줄거리가 실제 생활에서 좀 떨어져 극적으로 표현되는데에 익숙한 당시 관중에게 처음에 낯선 인상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충분히 의식한 슈트라우스는 글룩 (Christoph Willibald Gluck)이 그의 첫번째 개혁오페라 "알케스테" 때에 그랬듯이 "간주곡" 총보에 서문을 달아 설명하였다; 사랑과 살인 사건이 다루어지는 통례적인 오페라 각본에서 벗어난 이 작품으로 오페라의 새로운 길을 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내용이 사적인 장소에서 일반적인 언어로 표현되었으며 새 문명 기구인 전화와 전보가 사용되었다. 이 작품은 오늘날 별다른 주목을 끌지는 않지만 1920년대 말부터 크레넥 (Ernst Krenek), 힌데미트 (Paul Hindemith), 쇤베르크 (Arnold Schoenberg)에 의해 성행하기 시작한 시대오페라의 중요한 첫 작품으로 오페라 발전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 이 서문에는 "서민적 희극" 양식에 대한 슈트라우스의 정의가 포함되어 있는데 일상적인 언어도 여러가지 대화색도로 말미암아 음악 형성물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와 낭독조의 음악은 오페라 "간주곡"의 표적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슈트라우스 음악의 한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포식 삼매적인 가창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나중에 "카프리치오"에서 또다시 언어과 음악간의 문제를 다루었다.)

섬세히 다루어진 관현악의 요소는 자주 암시하는 정도로 경감되어 관중은 무대 위의 평범한 언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가사의 좋은 전달을 위해 사용된 원리는 강조되는 모음이 결코 기악 부분의 강음과 겹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서정적인 요소나 등장 인물의 심적인 경험은 막의 종결 부분과 12 장면 사이를 이어 주는 교향간주곡에서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부파오페라의 경우에 해당하는 작은 관현악단이 쓰였지만 기악곡 부분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고전이나 낭만 음악 곡목이 여러 가지 관계를 맺으며 기지 있게 인용되면서 등장 인물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그들이 대화할 때 흥을 돋군다. 또한 상황을 적절히 그리며 착색하여 핵심을 찌르는 주석을 다는 것이다. 썰매타기 장면의 서술, 농부들의 무도회를 묘사하는 효과적인 월츠와 랜들러의 사용 그리고 스캇놀이판을 피아노가 낀 건조한 실내음악으로 표현한 것은 언급할 만하다. 교향간주곡은 지난 장면을 설명하거나 보충하고 또한 다음 장면으로 인도하기도 하는데 라이트모티브로 다루어진 주제들은 여기서 정교한 대위법적인 세공을 받는다. 크리스티네가 남편을 동경하거나 마지막 화해하는 장면에서 넓게 펼쳐지는 서정적인 가락은 아주 흥륭하는 관현악단의 받침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이 오페라의 음악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화성 안에서 움직이지만 형편에 따라서는 심한 불협화음도 거침없이 포함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 자화상적인 작품에서 슈트라우스는 변덕스럽고 잔소리하기 좋아하는 아내의 극적인 기질을 인정 사정없이 다 드러내 보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정작 세상에 발표하고자 한 것은 그녀가 아주 훌륭한 여인이며 자기는 다른 여인이 아닌 바로 이런 생기 있는 아내가 필요하다는 거다. 슈트라우스는 친구들을 향해 사실은 그녀가 아주 부드럽고 순결한 천성인데 가시로 덮힌 고슴도치처럼 거칠 거칠한 껍데기에 쌓여 있을 뿐이라며 옹호하고 있다. 그는 아들 프란츠 에게 헌정한 이 작품의 총보를 1923년 8월 21일 남미 연주 여행 중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완성하였다. 초연은 1924년 11월 4일 장소는 가정 생활을 배경으로 둔 일상적인 내용을 감안하여 드레스덴의 오페라가 아니라 작은 연극극장으로 옮겼다. 슈트라우스의 가르미쉬 별장의 내부를 그대로 복사한 무대에서 등장 인물들이 당시 관중석의 앉아 있는 실제 인물들의 언행과 성격을 그대로 묘사한 경우로 관중의 특별한 자극을 일으켰다고 하겠다. 슈트라우스의 역으로 요제프 코렉 (Josef Correck)과 그의 부인 역으로 롯테 레만 (Lotte Lehmann)이 출연한 이 오페라는 프릿츠 부쉬의 지휘로 이루어진 초연은 성공리에 이루어졌다. 슈트라우스가 무용극 음악 "생크림"과 같이 60세를 기념으로 내 놓은 이 작품은 이어서 독일어권의 여러 무대에서 연주된 후 1927년 바르쎌로나에서 상연되기도 하였지만 한정적인 내용으로 그 후엔 아주 간헐적으로 오페라 연주 목록에 들어 또한 간주곡이 되고 말았다고 하겠다.

9.  "이집트의 헬레나" op. 75

이막의 오페라

각본: 후고 폰 호프만스탈

초연: 1928년 6월 6일 드레스덴 (국립극장)

개정판의 초연: 1933년 8월 14일 잘츠부르크 축제

등장인물

헬레나 (소프라노), 메넬라스 (테노), 헤르미오네 (소프라노, 그들의 딸), 아이트라 (소프라노, 이집트의 공주이며 요술사), 알타이어 (바리톤), 다우트 (테노, 알타이어의 아들), 신하, 요정, 모든 것을 아는 조개 (알토), 전사, 노예.

시간과 장소

일막; 이집트 해안에 위치한 아이트라 제국

이막; 트로야 전쟁 후 북아프리카 아틀라스 산맥 기슭의 종려 나무 숲

상연 시간; 약 2 1/2 시간

가극의 내용

일막

한 섬에 살고 있는 이집트의 공주며 요술사인 아이트라는 식사을 같이 하기 위해 연인 포세이돈 (바다의 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 방에 놓인 조개는 포세이돈이 에디오피아에 머물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아이트라는 손님이 오기를 원했다. 이때 조개는 섬 주변을 항해하는 배에 대해 보고 하였다. 여기에 트로야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스가 타고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십년에 걸친 트로야 전쟁의 원인이 된 아내 헬레나를 화염에서 구해 냈지만 그 동안 트로야 왕자 파리스의 애인이었고 또한 여러 트로야 남성들의 여자 친구가 되었던 그녀를 속죄양으로 없에 버리려 한다는 것이다. 제일 아름다운 이 여인을 구하려는 아이트라는 폭풍을 일으켜 배를 파괴하였고 메넬라스는 아내인 헬레나를 해안으로 구조하여 아이트라의 궁전으로 들어 갔다. 이제 헬레나는 호색적인 범죄 값을 갚게 되었다. 메넬라스는 정조를 지키지 않은 아내의 목을 향해 전에 파리스를 죽였던 검을 쑥 뺐다. 커튼 뒤에서 보고 있던 아이트라는 자기의 마술 능력과 수단을 이용하여 이 여인을 돕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요정들이 전사처럼 변장하여 전쟁 굉음을 일으켰다. 메넬라스는 그들을 트로야의 군인으로 여기고 또 그 속에 파리스가 있다고 생각하여 싸우러 황급히 튀어 나갔다. 이 사이 아이트라는 헬레나에게 연꽃으로 만든 진정수를 마시게 하여 재웠다. 메넬라스는 두 허상을 파리스와 헬레나라고 간주하고 단도로 꿰찌르고 돌아왔다. 아이트라는 그에게 망각수를 마시게 하고는 십년 전에 파리스에 의해 트로야로 유괴된 헬레나는 환영이었고 실제 헬레나는 신에 의해 이집트의 자기 아버지 궁전으로 옮겨져 나이를 먹지 않고 이제까지 잠만 잤노라고 하였다. 이때 옆방이 환해지며 헬레나는 잠에서 깨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메넬라스를 향해 걸어갔다. 금후 메넬라스는 아이트라의 이야기를 믿었다. 아이트라는 그들을 스파르타에 보내려고 하였으나 헬레나는 고향에서 다시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염려를 하여 아이트라에게 요술을 써 아무도 헬레나라는 이름과 트로야 전쟁에 대해 듣지 않은 땅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헬레나는 무릎을 꿇는 메넬라스를 부드럽게 끌어 올려 침실로 들어 갔다. 아이트라는 시녀들로 하여금 옷, 장신구, 귀중품 등을 포함한 짐을 싸게 했다. 그 속에는 연꽃즙이 들은 병도 들어 있었다.

이막

아이트라의 마술 외투로 이 두 사람은 이날 밤 중에 아틀라스 산맥 기슭의 종려 나무 숲으로 옮겨졌다. 헬레나는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으나 메넬라스는 의혹을 품기 시작했다. 망각수의 효과는 완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제 아이트라의 섬에서 진짜 헬레나를 죽였고 지금의 헬레나는 아이트라가 위로하기 위해 요술을 써서 그의 팔로 인도한 허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때 이 숲의 군주인 알타이어는 아들 다우트와 신하를 데리고 지나다가 신참자 메넬라스와 헬레나의 천막을 발견하고 찾아 보러 왔다. 아버지와 아들은 동시에 헬레나에게 반하였다. 늘 그래왔듯이 또 다시 내기가 일어난 것이다. 헬레나를 정복하려는 알타이어는 이방인 메넬라스에게 무기를 선물하고는 사냥을 주선하고 아들 다우트를 동반자로 딸려 보냈다. 천막 안에서 세 명의 노예복을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아이트라와 두 시녀로 헬레나를 도우려고 온 것이다; 왜냐하면 보낸 짐에 망각수 외에 기억수까지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헬레나는 그러나 메넬라스를 완전히 다시 얻으려면 그에게 과거를 분명하게 밝혀 자신이 바로 트로야의 헬레나임을 알게 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알타이어는 헬레나에게 밤 향연을 벌인 후 실천에 옮길 그의 음탕한 의도를 숨김없이 알린다. 사냥 중 메넬라스와 다우트는 맞붙어 싸웠는데 후자가 생명을 잃었다. 시체가 안으로 들여오는 사이 메넬라스는 자기도 이제 같은 길을 가야 한다는 슬픈 고백을 하였다. 이러는 사이 알타이어의 초대를 전하는 이국적인 모습의 형상들이 떠들썩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헬레나는 결정적인 순간이라 생각하며 메넬라스에게 기억수를 권했다. 부인을 이미 죽였다고 생각하는 메넬라스는 이 환상의 헬레나가 주는 사약을 마시고 속죄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기억수를 마셔 이제 완전히 의식을 되찾은 그는 단도를 또 한번 빼 들었다. 그러나 헬레나의 아름다움에 다시 굴복하여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다. 이때 알타이어가 외국인법을 남용하였으니 설명을 요구한다며 장막에 들어왔다. 알타이어가 헬레나를 장악하려하자 아이트라가 보낸 무장한 포세이돈의 병졸이 나타났고 알타이어와 그 부하는 달아나고 말았다. 메넬라스와 헬레나의 딸인 헤르미오네가 흰 말을 타고 와서 메넬라스에게 아름다운 어머니가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새로 다시 합친 부부는 두 마리의 말에 타고 딸과 함께 고향 스파르타로 향했다.

작품 설명

자기 주변의 현실적인 사건을 다룬 오페라 "간주곡" 다음 작품에서 슈트라우스는 그가 좋아하는 영역인 고대로 다시 돌아왔다. 호프만스탈이 제공한 헬레나 (Helena)의 관한 이야기이다. 많은 역사가, 작가, 조각가들은 제일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그녀에 이미 몰두한 바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녀의 남편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스 (Menelas)는 그녀를 납치해 간 트로야 (Troja)의 왕자인 파리스 (Paris)를 죽이고 그녀를 다시 찾아 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연대기 저자 헤로도트 (Herodot)는 파리스를 헬레나와 함께 스파르타에서 직접 이집트로 오게 하였다. 그 곳의 프로테우스 (Proteus) 왕은 그러나 뻔뻔스런 파리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헬레나를 억류하였고 적법의 소유자에게 돌려 주기 위해 귀중품과 더불어 헬레나를 유치하였다. 이 두 가지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스타이시코로스 (Steisichoros)는 두 명의 헬레나에 대한 줄거리를 전개시켰다; 첫 번째 진짜 헬레나는 이집트에 있었고 두 번째 상상의 헬레나는 트로야에서 방종한 생활을 누렸다는 것이다. 호프만스탈은 원래 이 여인에 대한 소재를 풍자적으로 가볍게 접근하려 했다. 그러나 서술하기 어려운 메넬라스의 극적인 상황을 상상하게 되면서 정반대의 시가를 창조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불타는 트로야에 침입한 밤, 여기 저기 함몰하는 궁궐의 벽 사이에서 헬레나를 구해낸 남편 메넬라스의 심경을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여인으로 인하여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은 끔찍한 십년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녀를 다시 찾은 순간 그녀는 파리스의 과부요 또한 그 외 프리아모스 (Priamos)의 열 내지 열 두 다른 아들들의 과부이기도 했던 것이다. 메넬라스가 이 여인을 자기 배에 태웠음에 틀림이 없겠지만 그 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몇 년 후 오디세우스 (Odysseus)의 아들이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자 그리스 왕국을 여행할 때 스파르타에서 메넬라스와 헬레나를 보게 되었다. 큰 궁전에서 살고 있는 이 부부는 아름답고 평화로와 보였다. (헬레나는 그러나 트로야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마다 남편에게 망각수를 권해 괴로운 기억이 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고 호머는 기록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 났길래 이 부부는 다시 안락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그의 대답으로 호프만스탈은 "이집트의 헬레나"라는 각본을 창작한 것이다. 그는 전해오는 헬레나의 신화를 근본적으로 변형하여 트로야의 헬레나와 이집트의 헬레나 (허상과 원형)를 한 형상으로 융합하였다. 그래서 아이트라에 의해 난파선에서 구조되고 그녀의 성으로 오게 된 메넬라스는 한 여인을 앞에 두고 줄곧 두 존재 즉 실제의 헬레나와 허상의 헬레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딸 헤르미오네 (Hermione)가 등장하고서야 비로소 메넬라스는 현실로 반송되었다. 헬레나 자신은 기만이라는 직물을 찢어 자신이 바로 파리스가 강탈해 간 아내라며 검의 일격으로 죄갚음을 하려고 하였다. 헬레나의 아름다움은 또 다시 모든 것을 초월하게 만들어 이야기는 행복하게 끝난 것이다.

일막은 외형상 현실적인 대화극인데 내용으로 보면 환상 신비극으로 긴밀한 짜임새를 가졌다. 작가는 여기서 여성미가 한 남자의 명예나 체면을 극복하게 한다는 것을 메넬라스의 경우를 들어 보편타당성의 경지로 끌어 올린 것이다. 이막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여러 사람들과 만나면서 시작한다; 사막의 왕 알타이어, 그의 아들 다우트, 군인들, 젊은이, 늙은이, 비성적인 사람들. 이런 해후상봉은 메넬라스를 다시 허상이냐 원형이냐 하는 갈등 속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말하자면 일막 상황의 반복이었다. 오직 등장 인물들이 일막에서 인간화되었다면 이막에서는 조작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이막은 바로크와 고대의 요소가 섞이고 여러 작은 에피소드로 나누어져 구성이 산란하다. 슈트라우스는 이렇듯 여러 가지 이질적인 성분이 혼합된 줄거리에 또한 아주 섬세한 언어로 표현된 호프만스탈의 각본에 가락이 위주가 된 단순한 음악을 붙였다. 그는 레치타티브도 없고 아리아도 없는 완전한 영서창의 양식을 산출하여 모든 사건이 계속 흐르듯이 진행되도록 하였다. 이목을 끄는 것은 또한 자연스런 낭독조 음악의 성부가 너무 낮거나 높게 않아 가사가 잘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친 다성적인 치장을 피하고 라이트모티브처럼 전 작품을 망라하여 나오는 동기도 간단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관현악은 특히 일막에서 (분위기 표현이나 파로디풍의 요정들이 나온 장면 묘사 또 젊어진 헬레나가 잠에서 깨어나는 부분)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격앙된 음악극을 포함한 이막에서나 그리고 동양적인 환경, 마술주 또 마술의 효과를 나타내는 부분에서는 거대한 관현악단이 동원되어 전형적인 슈트라우스 음악인 풍만한 음향 회화도 그려지고 있다.

이 오페라의 총보는 슈트라우스의 경탄할 만한 능력을 다시 증인하고 있지만 신의 섬광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불가해한 영혼의 음악이라기 보다는 감각적인 색채와 뜨거운 성애가 주류를 이루는 듣기 좋고 쾌적한 음악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작품으로 슈트라우스가 회고를 시작한 것일까? 많은 비평가들의 판단처럼 정말 슈트라우스가 "그림자 없는 여인" 후 새로운 것을 쓰지 못하고 노련하게 형태만 바꿔 반복한 것일까?; "이집트의 헬레나" 를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의 변주곡으로 간주할 것인가? 또한 "다나에의 사랑"과 "다프네"도 이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라벨라"를 "장미기사"의 연속으로 볼 것인가? 확실한 것은 독창적인 힘을 잃었을 지는 모르나 그의 양식은 고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슈트라우스가 1923년 봄에 시작한 이 작품의 총보는 1927년 10월 8일 가르미쉬에서 완성되었다. 초연은 프릿츠 부쉬의 지휘로 1928년 6월 6일에 드레스덴에서 훌륭하게 이루어졌으나 (그후 6년간 50회 공연이 이루어짐) 리브레티스트와 작곡가는 전적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호프만스탈은 가사를 수정하려고 계획했으나 1929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수행할 수 없었다. 후에 클레멘스 크라우스 (Clemens Kraus)의 제기로 연출가 로타르 발러슈타인 (Lothar Wallerstein)이 현묘하게 암호화된 이막을 많이 줄인 최종판 (음악 개작은 슈트라우스)을 완성하여 1933년 8월 14일 잘츠부르크 축제때 상연하였다.

10.  "아라벨라" op. 79

삼막의 서정적 희극

각본: 후고 폰 호프만스탈

초연: 1933년 7월 1일 드레스덴 (국립극장)

등장인물

발트너 백작 (베이스), 아델라이데 (메쪼 소프라노, 발트너 부인), 아라벨라, 츠뎅카 (소프라노, 그들의 딸), 만드리카 (바리톤), 마테오 (테노, 장교), 세 명의 아라벨라의 흠모자; 엘레메르 백작 (테노), 도미니크 백작 (바리톤), 라모랄 백작 (베이스), 피아카밀리 (소프라노), 카드로 점보는 여자 (소프라노), 나레이터 (만드리카의 경기병, 하인, 객실 사환), 아라벨라의 동반인, 의사, 마부, 무도회, 호텔의 손님 등

시간과 장소; 1860년대 빈

상연 시간; 약 3 시간

가극의 내용

일막

카드놀이를 무척 좋아하는 퇴역한 기병대위 발트너 백작은 영락해졌는데 귀족 체면을 중히 여겨 도박으로 걸맞는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한다. 그 동안 부채는 늘고 늘어 파산을 피하는 단 한가지 방법은 예쁜 딸 아라벨라를 빨리 부자집으로 시집보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방에 살던 이 백작 가족은 일이 쉽게 풀릴 것을 기대하며 수도인 빈으로 이사를 했다. 재정상 두 딸을 신분에 맞게 성장시키기에 벅찬 나머지 부인 아델라이데는 아라벨라의 여 동생인 츠뎅카에 남자이름인 츠뎅코를 붙혀 주고 소년복을 입게하여 지원자들이 전적으로 아라벨라에게 집중하도록 하였다. 드디어 세명의 귀족이 나타나 아라벨라에게 구혼하였다; 정력적이고 돈 많은 엘레메르 백작, 친절한 도미니크 백작, 품위있는 라모랄 백작. 그리고 아라벨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테오 소위가 있었는데 아라벨라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재산이 전혀 없는 그는 이런 상황이 고통스러워 자살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걱정이 된 츠뎅카는 마테오에게 계속 희망을 품게하여 이런 어두운 기도에서 멀어지도록 하였다. 그녀는 언니에게 마테오의 청을 들어 주라고 재촉할 뿐만 아니라 아라벨라 이름으로 허구의 연애 편지를 보냈다. 백작의 딸 아라벨라는 그러나 계속하여 적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 밀린 계산서는 쌓이고 쌓여 갔다. 매일 도박하여 돈을 잃는 아버지가 돌아 왔다. 이젠 끝장이다. 그는 같은 연대에 있던 대지주인 친구 만드리카 (Mandryka)에게 여러 번 편지를 하여 도와 달라고 했는데 한 번도 답장을 받아 보지 못 한 것이다. 마지막 편지에는 아라벨라의 사진까지 넣어 보냈지만 소식이 없었다. 그런 중 객실 사환이 만드리카의 명함을 전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호감이 가는 한 젊은 신사가 들어 오더니 돌아가신 아저씨의 상속자로서 편지를 받아 아라벨라의 사진을 보고 반하여 그녀 아버지에게 딸을 주십사 청하러 빈으로 올라 왔다고 하였다. 발트너 백작은 만드리카가 재산 규모를 밝히며 재정이 곤란하면 쓰라며 꽉 찬 지갑을 건네니까 더욱 기뻐하며 동의하였다.

이막

이막은 무도장에서 벌어진다. 약정된 대로 아라벨라는 만드리카에게 소개되었다. 서로 마주 서서 보며 아라벨라는 아까 집에서 창문을 통해 거리에서 보았던 바로 그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성적이고 고귀한 외모와 총명하고 진지한 눈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들은 서로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세 명의 귀족 연모자에게 작별을 고하겠다며 시간을 청구하였다. 만드리카를 위해 몇 자 쓴 후 그녀는 호텔로 돌아갔다. 이러는 사이 츠뎅카는 마테오의 생명을 걱정하여 숙명적인 계획을 짜냈다. 무도장에서 남장을 한 그녀는 마테오에게 열쇠가 들은 봉투를 건네 주며 아라벨라의 방 열쇠이며 15분 후 연인이 그 곳에 나타나리라고 하였다. 우연히 이 대화를 들은 만드리카는 속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때 아라벨라가 쓴 카드가 전해졌다; 안녕히 주무세요. ... 내일 부터 저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그는 더욱 절망하였다. 마침 유쾌하고 떠들썩한 일행이 만드리카를 낚아채 무리에 끼도록 했다. 술자리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무도회를 즐기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때 발트너 부부가 등장하여 아라벨라를 찾으니까 그는 공개적으로 그녀를 의심하였다. 발트너는 진상을 밝히자며 호텔로 동반할 것을 요구하였다.

삼막

호텔의 계단부에서 극적인 갈등은 절정에 다다른다. 돌아온 아라벨라의 부모와 만드리카는 여기서 말다툼하고 있는 아라벨라와 마테오를 발견한 것이다. 방금 아라벨라와 사랑의 시간을 나누었다고 생각하는 마테오는 쌀쌀하고 매정한 그녀의 태도가 이상했고 왜 그녀가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흥분해 있던 만드리카는 이런 장면 앞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감정을 해치는 말을 하여 공개적으로 아라벨라를 모욕하였다. 이러자 발트너 백작은 그에게 결투를 신청하였다. 이때 풀은 머리에 여성적인 잠옷을 입은 츠뎅카가 나타나 엉클어진 상황을 설명하었다. 그녀는 언니에게 자기가 어두운 방에서 마테오에게 몸을 허락하였노라고 고백하며 자포자기한 마테오가 아라벨라를 가졌다는 믿음으로 다시 원기를 찾기 바랬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자신도 잘 몰랐으나 츠뎅카는 사실 마테오를 사랑했던 것이다.) 만드리카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테오와 츠뎅카의 중매인으로 발트너 백작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나간 후 혼자 남은 그는 부당한 불신으로 아라벨라의 사랑을 아깝게도 놓쳐 버렸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아라벨라는 방에서 나와 한 잔의 물을 그에게 건넸다; 만드리카의 고향 크로아티아의 오랜 관례로 소녀가 청혼자에게 신랑으로 삼고 남편으로 정했다는 표시이다.

작품 설명

신비스런 "그림자 없는 여인"과 상징적인 오페라 "이집트의 헬레나"를 제작한 둘도 없는 짝 친구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스탈은 다시 한번 가벼운 소재에 눈을 돌려 시간을 초월한 소재에서 시류를 좇는 그리고 고대에서 현대적인 사회극인 "아라벨라"를 창작하게 되었다. 작곡가가 두 번째의 "장미기사"라고 칭한 적이 있듯이 이 작품으로 그들은 빈의 희극을 또 다시 소생시켰다. 호프만스탈이 자유롭게 고안한 이 작품의 줄거리는 원래 1910년 저작한 그의 단편소설 "루씨도르 (Lucidor)"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소설이 슈트라우스의 마음에 들자 호프만스탈이 오페라 각본으로 개조하였던 것이다. 빈의 사육제 기간이 배경이 된 "아라벨라"는 "장미기사"같이 일정 시대의 풍습과 문화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작가는 낡고 파손된 당시의 도덕에 대해 침묵하지는 않지만 이번에도 도나우강 중심지의 한 전성기를 회상하고 있다. 1860년대 빈 사육제의 한 중심 인물인 여가수 피아카밀리 (Fiakermilli)외의 모든 등장 인물들은 전적으로 호프만스탈의 상상력에서 발원했다. 실상 은장미를 수교하는 전례 ("장미기사")가 없었던 것처럼 사랑의 고백으로 유고슬라비아의 소녀가 구혼자에게 물잔을 건네는 것은 순전히 호프만스탈의 착상으로 조형력이 있는 통속적 장면을 제공한다.

이 오페라에서 우리는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생기있는 음악의 발광력을 경험하게 된다. 서정적 희극이라는 표제에 알맞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조의 음악이 대화 부분에 많이 끼여 있는데 오페라 역사상 유일하여 특별히 언급할 것은 두 개의 감미롭고 진한 유고슬라비아 민요가 기본이 되어 아라벨라와 츠텡카, 아라벨라와 만드리카의 이 중창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빈의 분위기와 환경은 "장미기사"에서 처럼 월츠로 그려내었는데 여기서는 역사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피아카밀리의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콜로라투라도 요들 창법으로 노래하는 그녀를 상징화한 것이다. 거친 불협화음을 피하고 단순한 화음을 특대함으로 밝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비더마이어풍 작품의 특색을 강조하고 있다. 중요한 동기는 세련된 대위법적인 가공을 받는데 이것으로 작가가 여전히 탁월한 능력의 소지자임을 증명한다고 하겠다.

"아라벨라"는 호프만스탈의 최후의 작품으로 이 각본을 끝낸지 얼마 안되어 사망하여 슈트라우스는 이때까지와는 달리 장면 장면에 대해 그와 상의하며 작곡할 수 없었다. 1929년 부터 1933에 걸쳐 작곡된 이 작품의 초연은 1933년 7월 1일 드레스덴의 오페라에서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곧 빈, 런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상연되었고 1935년에는 취리히와 암스테르담에서 들을 수 있었으나 독일의 정치적인 고립과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이 작품이 계속하여 유포되는데 장애가 되었다. 호프만스탈과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공동 작품인 이 오페라는 1945년 이후 드디어 세계적인 무대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자주 전문가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늘 관중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상연되었다.

11.  "말없는 여인" op. 80

삼막의 희극

각본: 슈테판 츠바이크

초연: 1935년 6월 24일 드레스덴 (국립극장)

등장인물

모로주스 경 (베이스), 그의 가정부 (알토), 이발사 (바리톤), 헨리 모로주스 (테노, 모르주스 경의 조카), 아민타 (소프라노, 그의 아내), 이조타 (소프라노), 카를로타 (알토), 모르비오 (바리톤), 바누찌 (베이스), 파르팔로 (베이스), 희극 배우들

시간과 장소; 1780년대 런던의 변두리

상연 시간; 약 2 1/4 시간

가극의 내용

일막

영국 해군 장교였던 모로주스 경은 (모로주스는 라틴어로 까다로운, 무뚝뚝한, 시끄럽게 잔소리하는 툭하면 화를 내는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모은 귀중품이 가득차고 아늑한 집에서 한 가정부를 두고 살고 있었다. 아침에 이발사가 오자 보통 기회를 갖지 못하는 가정부는 수다를 잔뜩 떨어댔다; 일찌기 함선 화약실이 폭파할때 고막을 일은 후 모로주스 경은 아주 소음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시끄러워 잠에서 깨어난 모로주스 경은 이 가정부를 방에서 쫓아 내버린다. 면도를 하며 이발사는 유복하고 딸린 가족이 없으니 나이가 들었어도 그를 돌볼 젊고 조용한 여인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에게 결혼할 것을 권한다.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나자 문 쪽으로 간 모르주스 경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조카를 보고 깜짝 놀라 집으로 들인 다음 여기서 살다가 자기 유산을 물려 받으라고 했다. 이 조카는 혼자가 아니고 자기 부대와 같이 왔다고 하였다. 모로주스 경은 그래서 군인으로 이해를 하였는데 사실은 이탈리아 오페라단을 의미하였다. 이 조카는 가수고 이 오페라단 제 일 소프라노는 아민타라고 그의 아내였다. 바누찌의 인솔로 희극배우들은 들어오고 있었다. 모로주스 경은 시끄러운 배우와 가수를 집에 둔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 그는 조카의 상속권을 박탈하고 그와 오페라단에게 문을 가르키며 나가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이발사에게 제안한 대로 한 여인을 구해 오라고 지시한 뒤 방에서 나갔다. 헨리는 체념을 하려는데 이발사가 와서는 이렇게 큰 유산을 포기할 생각이냐며 돈을 주면 모로주스 경이 결혼 생활에 취미를 잃도록 해 버리겠노라고 하였다. 음모극을 꾸며 위장 결혼에 넘어가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역할 분담이 일어난다; 바누찌는 목사, 모르비오는 공증인, 파르팔로와 합창단은 선원, 카를로타는 어리석은 시골하녀, 이조타는 교태부리며 유행을 쫓는 여자, 아민타는 조용하고 겸손한 소녀이다.

이막

다음 날 오후 모로주스는 신부감을 보게 되었다. 계획한 대로 희극 배우들이 나타났고 예상대로 그는 수줍고 조용한, 여기서 티미다로 불리워지는, 아민타를 신부로 선택하였다. 목사와 공증인이 식을 진행하고 이발사와 가정부는 증인으로 나선다. 시끄럽게 파르팔로를 선두로 축하한다며 선원들이 들어 오며 이웃 사람들도 불러대니 모로주스 경은 분개한다. 이발사가 주점에서 모로주스 경의 비용으로 맥주를 마시도록 하니 이들은 물러갔다. 드디어 티미다와 모로주스 경은 단 둘이 되었다. 그가 막 부드러워지려고 하니 그녀는 돌변하여 소리지르며 자기를 귀찮게 하지 말라며 일생동안 침묵하며 비탄에 잠겨 보내고 싶지 않노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문의 커튼을 잡아 당겨 벽에 걸려 있는 전승 기념물을 파괴하였다. 깨지는 소리를 듣고 들어 온 헨리는 당장 숙부의 편을 들면서 티미다를 내 쫓았다. 그는 곧 이혼 수속을 밟겠노라 숙부에게 약속했다. 감동하며 숙부는 취침하러 갔다. 헨리는 아민타를 불러 사랑스럽게 껴 안고 숙부에게 동정심을 품은 그녀는 그에 대한 책동이 여기서 끝났다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삼막

다음날 아침 방 가구를 설비하는 수공업자들이 와서 시끄러운 작업에 들어갔다. 쳄발로가 들어 오고 티미다는 곧 성악 교사와 반주자로 변장한 헨리와 파르팔로에게 교습을 받는다. 모로주스는 제발 좀 멈춰 달라고 하였다. 드디어 이발사는 법관과 같이 나타났다. 바누찌는 판사로 파르팔로, 모르비오는 변호사로 등장한다. 모로주스는 훈장이 달린 군복을 입고 나왔다. 이혼의 이유가 되는 열 두 가지 혼인 장애가 열거된다. 모로주스는 첫 번째 이유를 걸었다; 결혼한 사람은 그가 결혼하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법정은 그러나 충분한 이유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거절하였다. 신부의 순결성이 파괴되었을 경우가 언급되자 이발사와 카를로타 그리고 이조타가 티미다가 혼전에 다른 남자와 관계가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티미나는 한사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이때 이발사는 또 다른 증인 하나를 불러 들였다. 몰라볼 정도로 변장한 헨리가 나타나서 티미다와 관계를 맺은 바 있다고 하였다. 이러자 한 변호사가 처녀성이 혼인 계약에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혼될 수 없다고 논박하였다. 모르주스는 섬멸된 듯이 침대에 털썩 내려 앉았다. 이러자 헨리와 아민타가 가면을 벗고 모르주스 경은 모든 것을 유모로 받아들이며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괴벽과 연극, 음악에 대한 혐오심이 치료되었다고 하였다. 희극 배우들이 차례로 나가자 모르주스 경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헨리와 아민타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다시 찾은 평온을 즐겼다.

작품 설명

이 오페라의 각본은 영국의 작가 벤 죤슨 (1573-1637)의 "에피코에네 또는 말없는 여인"을 슈테판 츠바이크 (1881-1942)가 자유롭게 개작한 것이다. 벤 죤슨은 쉐이크스피어의 동시대 작가인데 사실적인 풍속 희극을 써서 그 당시 큰 성공을 거둔 작가였다. "말없는 여인"에는 17세기나 18세기의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에 곧잘 쓰이던 한 희극의 제재가 사용되었는데 실제 도니쩨티의 "돈 파스꾸알레"와 로씨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병행하는 부분이 많다. 생활 양식이 다르다고 조카의 유산 상속권을 박탈한 숙부, 변장, 위장 결혼, "치료"를 위한 공모 등은 이탈리아의 민속 익살극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익살극의 주요 인물들이 수동적이고 고정적인 반면 여기서는 능동적이며 개별화되어 있다. 특히 인간적인 것은 늙은 모루주스 경이 위안을 주는 연정을 갈망하는데 고통을 주는 사람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아민타 자신이 이 때문에 또한 고통스러워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서곡대신 주요 테마를 담은 접속곡으로 이 오페라는 시작된다. "아리아드네"의 초반 부분과 "간주곡"에서 처럼 가볍고 요점이 많은 유려한 대화체가 주를 이루는 음악인데 감상적인 성부나 말로 자주 중단된다. 오페라 부파의 구조를 본받아 이 작품에는 닫힌 형태의 아리아가 많이 나오는데 전체적인 사건에 유기적으로 접합되어 있다; 모로주스의 "종의 아리아", 이발사의 여러 절로 이루어진 소가곡, 시골 색시로 변장한 가수 카를로타의 놀라운 알토 콜로라투라, 결혼한 후 돌변한 아민타가 모르주스 경에게 퍼붓는 장광설 등. 슈트라우스는 "말없는 여인"을 침묵하는 여가수나 휴식하는 관현악으로 상징하지 않았다. 말이 없는 여자 자체가 모순이 아니냐는 전제에서 그녀는 쉬지 않고 노래하는 콜로라투라 프리마돈나이다. 또 소음에 시달린다는 모로주스 경은 시끄러운 베이스로 등장한다. (끝부분에 가서 "치유"된 그는 드디어 아름답게 노래한다.) 이 오페라는 크고 작은 훌륭한 중창곡 장면이 많이 삽입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언급할 것은 일막의 마지막 중창곡이다. 작곡가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식"의 이막 종결 중창곡이 본보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 묘사를 위해 또한 이탈리아의 르네쌍스 그리고 바로크풍의 주제와 고대 영국의 가락을 개의치 않고 인용하였다; 혼인식과 공증인이 나오는 장면에는 17세기 영국 기악곡의 모음집 (Fitzwilliam Virginal Book)에 들어 있는 한 주제를 인용하였고 삼막의 성악 교습 장면을 위해 몬테베르디의 "포페아의 대관식"에서 뽑은 아리아에다 자신의 변주곡을 비치하였다. 예를 들어 "바누찌의 명성은 우리 나라에 까지 스며 들었네"라는 가사에 "리골레토"의 "여자의 마음은 갈대 ..."를 개시하는 악보가 나오고 피아노 연습하는 학생을 (죤 필드의 야상곡을 암시하는) 판에 박힌 셋잇단음표와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시작 부분의 리듬을 인용하여 나타냈듯이 이 작품은 음악적인 익살이 많기로 유명하다. 희극 "말없는 여인"은 슈트라우스가 일흔이 되어 작곡하여 거의 아흔이 된 거장 베르디의 성공적인 희극 "팔스타프"에 비유될 수 있다. (베르디는 52년 전 실패로 돌아간 "하루 동안의 왕"이라는 그 자신 최초의 희극을 작곡한 바 있었다.)

슈트라우스는 "아라벨라"의 삼막을 관현악으로 편곡하던 중인 1932년 10월 1일 "말없는 여인"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총보는 1934년 10월 20일에 완성하였고 접속곡은 나중에 작곡하여 1935년 1월 17일 가르미쉬에서 끝냈다. 이 작품의 상연은 당시 독일 정치 주권자들의 규정에 따라 리브레티스트가 아리안 사람이 아니라서 문제가 되었다. 앞으로 츠바이크와 계속 같이 작업하기를 희망하던 슈트라우스는 끝까지 진력하여 1935년 6월 24일 칼 뵘의 지휘로 드레스덴에서 초연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곧 금지법이 내려져 세 번째의 상연은 일단 독일에의 마지막 상연이 되고 말았다. 그 후 독일어권의 외국 상연은 프라하와 취리히에서 이루어졌고 이탈리아 말로 번역되어 밀라노에서 (뭇쏠리니의 특별허가를 받아) 연주되기도 하였지만 정작 독일 국민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작품을 다시 감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오페라는 1946 비로서 다시 독일 오페라 극장 (드레스덴)의 연주 목록에 포함되었다.

12.  "평화의 날" op. 81

일막의 음악극

각본: 요제프 그레고르

초연: 1938년 7월 24일 뮌헨 (국립극장)

등장인물

포위된 도시의 사령관 (바리톤), 마리아 (소프라노, 그의 부인), 경찰관 (베이스), 사냥꾼 (테노), 포술 하사관 (바리톤), 근위 기병 (베이스), 호른 주자 (베이스), 장교 (바리톤), 전방의 장교 (바리톤), 피에몬트 사람 홀스타인의 지휘관 (베이스), 시장 (테노), 수도원장 (바리톤), 평민 출신의 여인 (소프라노), 군인들, 시의 우두머리와 여인들 , 민중

시간과 장소; 1648년 10월 24일 (30년 전쟁이 끝난 날) 포위된 도시의 내성

상연 시간; 약 1 1/2 시간

가극의 내용

포위된 도시에서 경찰관은 야경을 돈다. 당직하는 포수는 자신이 본 온갖 비참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경찰관은 모든 무장을 하고 철야하는 사령관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고 비난하였다. 한 피에몬트 사람은 황제의 편지를 사령관에게 전하고 동틀녘에 사랑에 대한 노래를 한다. 군인들은 원기를 얻어 서로 몇마디 말을 주고 받는다. 그들의 대부분은 이미 열살때 군인이 되어 평화가 무엇인지 고향이 무엇인지 애인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군가가 울리자 그들은 다시 군인이라는 자각을 한다. 굶주린 대중은 빵과 물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경찰관은 군인들에게 무기를 들라고 요구하자 마지 못해 복종한다. 평민의 대표단은 사령관을 만나 아사 직전의 도시를 투쟁하지 않고 양도할 것을 요구하나 거절당한다. 황제의 명령에 따라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도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상처입은 한 전방의 장교가 와서 탄약를 달라고 하자 사령관은 지하에 탄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참아낼 수가 없게 되어 내성을 폭파하려고 한다. 동시에 군인들의 명예도 지켜 주려는 것이었다. 사령관의 부인 마리아는 이런 의도를 알아내고는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한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는 남편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폭발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때 무겁게 내리 누르던 정적은 포격으로 깨졌다. 적의 공격인가? 아니었다. 도시의 종이 울렸고 환희의 소리가 들렸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 조약이 맺어졌던 것이다. 시장은 시의 성문을 활짝 열도록 하였고 적의 최고 지휘관은 꽃으로 장식된 군주기와 다른 평화를 상징하는 것들로 에워 싸여 다가왔다. 사령관은 아직도 결심이 서지 않아 검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이 순간 그의 부인이 그 사이로 몸을 던졌다. 두 지휘자가 서로 껴안자 사람들은 더욱 크게 환호하고 찬연한 태양은 평화가 돌아와 행복한 이 시간을 비추고 있었다.

작품 설명

이 영웅적인 오페라는 30년 전쟁의 마지막 순간을 무대 위에 올린 것으로 슈트라우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곡한 시사성을 가진 음악극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제기로 착수된 이 작품의 각본은 그가 더 이상 슈트라우스와 독일 무대를 위해 일할 수 없게 되자 빈의 연극가 요제프 그레고르가 담당하여 완성하게 되었다. 그는 슈트라우스가 같이 작업한 세번째 리브레티스트였다.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 음악의 전형적인 폭넓은 가락과 설렁이는 관현악 음향이 빠져 있는 진기한 작품이다. 관념의 전달을 위해 슈트라우스는 여기서 그런 것들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끝부분에서 정화되어 투명한 맺음을 갖기까지 이 오페라의 음악은 소제에 걸맞게 거칠고 준엄하다. 형식상 이 작품은 오라토리오에 접근한 합창 오페라라고 하겠다. 라이트모티브의 기술은 거의 전적으로 사라지고 완결된 독창곡과 합창곡이 주를 이룬다; 초반의 장송 행진곡, 피에몬트 사람의 노래, 시민의 합창, 사령관의 기병의 노래, 종악장의 평화 행진곡. "평화의 날"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의 상징성이다. 사령관은 이성을, 마리아는 용기와 신뢰, 시민들은 영혼을 상징하고 있는데 이들은 서로 용납 못하고 있으며 고통과 고뇌 속에서 행복에 대한 희미한 동경을 하고 있을 뿐이다. 평화라는 기적은 심리 현실적인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고 동화에서처럼 밖으로 부터 들여와졌다. 즉 고통이 가장 심할 때면 도움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평화의 날"은 오페라라기 보다는 내적 외적인 평화를 위한 짧고도 정실한 음악적인 기도라고 하겠다. 1938년 6월 24일 개가를 울린 뮌헨의 초연이었지만 독일의 정치적인 상황은 이런 평화주의적인 홍보를 오래 허용하지 않았다. 일년 후 이 작품은 "말없는 여인"처럼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13.  "다프네" op. 82

일막의 전원 음악극

각본: 요제프 그레고르

초연: 1938년 10월 15일 드레스덴 (국립극장)

등장인물

페네이오스 (베이스), 게아 (알토), 다프네 (소프라노), 로이키포스 (테노), 아폴로 (테노), 네명의 양치기 (테노, 바리톤, 베이스 2), 두명의 시녀 (소프라노))

합창; 양치기, 바커스 행렬의 변장한 사람들, 발레; 디오니소스 축제 때 춤으로 하는 무언극

시간과 장소; 신화 시대 페네이오스 강변에 있는 페네이오스의 초옥 (오두막, 천막집)

상연 시간; 약 1 3/4 시간

가극의 내용

올림포스 산 기슭에서 어부 페네이오스의 호른 소리는 양치기들을 자연과 모든 생명의 축제인 디오니소스 기념제로 부른다. 페네이오스와 게아의 딸 다프네는 해가 지면서 형제라고 여기는 나무나 덤불, 꽃, 샘물, 여러 색의 나비와 더 이상 같이 놀 수 없어 한탄한다. 그녀는 동생이라고 여기는 어릴 적에 심은 한 나무를 껴안는다. 이 나무 뒤에서 로이키포스가 뛰어 나와서는 어릴 때 같이 놀던 것을 상기시키며 그녀가 얼마나 즐겨 그의 피리 소리를 들었는지 말해 주었다. 그녀는 그러나 자연의 소리만 들었다고 하였다. 로이키포스는 이제 청년이 되어 놀이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아 자기의 피리를 분질러 쪼개 버렸다. 그는 사랑하는 다프네가 갖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디오니소스 기념제는 낯설었다. 그리고 로이키포스도 그녀에게 서먹서먹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그는 어릴 적의 놀이 친구일 뿐이었다. 절망한 그는 떠나갔다. 게아는 다프네의 행동때문에 걱정하고 있다. 그녀는 두 하녀로 하여금 다프네가 축제때 입을 좋은 옷과 장신구를 마련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다프네는 있는 그대로 있고 싶어했다. 어머니 게아는 곰곰이 생각하며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 간다. 그러는 사이 하녀들은 로이키포스에게 다프네에게 거절당한 옷을 권하며 이 옷을 입으면 일단 다프네에게 접근하기 쉬우니 사랑 쟁취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하였다. 처음에는 주저하였지만 그는 이 제안을 받아 들였다. 페네이오스와 게아는 목동들과 같이 나타났다. 이전에 그는 신이었는데 올림포스 산에 살던 거주자들이 식사하러 내려왔던 것에 대해 이야기 하며 웃었다. 이 웃음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계속 반복되자 목동들은 게아에게로 달려갔다. 이때 한 소치는 목동이 활과 화살통을 메고 왔다. 그는 올림푸스 산 기슭에서 가축을 치고 있다고 하였다. 이상스런 꽃향기와 기름 연기로 황소들이 발정을 했으나 머슴들의 도움으로 진정시킬 수 있어서 여기에 올 수 있다고 하였다. 게아와 목동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페네이오스는 그를 축제로 초대를 하고 게아를 통해 딸 다프네가 오도록 하였다. 이 목동은 사실 태양신 아폴로였다. 그는 그 자신이 발정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저급한 복장을 하고 거짓말을 하여 인간사이로 슬쩍 끼어든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했다. 다프네가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 아폴로는 그녀의 모습에 반했다. 그는 처음 쌍둥이 자매 아르테미스라고 생각했다. 그가 여동생이라고 부르자 다프네는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녀는 아폴로의 손에 술을 붓고 푸른 외투를 둘러 주었다. 그가 빛으로 된 마차를 타고 가는 이야기를 하자 다프네는 의심스러워한다; 그가 어떤 강력한 존재라고 추측하지만 신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한편 아폴로가 점점 더 감격하여 다프네를 끌어 안고 입을 맞추자 이를 물리치지는 못한다. 그러나 아폴로의 사랑의 불꽃을 느끼고 다프네는 크게 당황하여 그의 팔에서 빠져 나왔다.

디오니소스 축제가 시작되었다. 수컷의 양으로 변장한 목동들이 춤을 춘다음 소녀들의 행진이 있었다. 이 대열에 로이키포스도 끼어 있었다. 그는 다프네에게 다가가 마실 것을 권했고 다프네는 그를 여자 친구로 여기고 그를 따라갔다. 그러나 아폴로는 로이키포스의 기만을 폭로하였다. 목동들은 로이키포스를 보호하려고 했으나 아폴로는 천둥과 번개를 불러 큰 혼란을 일으켰다. 급히 페네이오스와 게아 그리고 목동들은 양떼 있는 곳으로 갔다. 이러자 로이키포스는 여장을 벗고 단호히 다프네에게 디오니소스의 이름으로 요구하길 이 이방인을 저버리고 그의 사랑을 따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폴로에게 가면을 벗으라고 재촉하였다. 다프네도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하자 아폴로는 자신이 태양신임을 밝혔다. 다프네는 빛의 신을 따르겠으나 열화의 신을 따라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로이키포스가 그녀의 결정을 아폴로를 저주하는 말로 동반하자 아폴로는 활을 당겨 버렸다. 순간 다프네는 애인의 시체 앞에서 큰 죄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댓가로 그 동안 사랑하던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였다; 꽃, 나비, 시냇물, 행복하던 어린 시절. 아폴로도 자신의 부정과 오류를 깨닫게 되었다. 디오니소스의 힘으로 거드름을 피웠던 것이다. 그는 남자 형제 디오니소스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아버지 제우스에게 다프네를 다시 달라고 했는데 인간의 형태가 아니고 늘 초록색인 월계수로 갖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 나무를 평화로운 경기에서 이긴 사람을 위한 최고 영예의 상징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하였다. 아폴로가 자리를 뜬 후 다프네도 가려고 했으나 갈 수 없었다. 그녀는 깊이 뿌리를 내렸고 천천히 나무로 변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나뭇잎의 살랑살랑하는 소리로 바뀌었다.

작품 설명

다프네는 그리스말로 월계수를 뜻한다. "다프네"의 각본은 아폴로와 다프네에 대한 고대 신화을 바탕으로 요제프 그레고르가 자유롭게 창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줄거리는 원본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특히 아폴로가 직접 제우스에게 다프네가 나무가 되도록 부탁하는 장면은 새로운 제재이다. 슈트라우스는 이 창작 과정에 적극 참여하여 장면 구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 그레고르는 자연에 혼을 불어 넣는 헬레니즘에 따라 인간을 자연과 신에 동일시하였다. 페네이오스는 강의 이름이며 그 강가에 사는 어부들을 뜻한다. 그의 아내 게아는 동시에 강가의 있는 초록색의 땅이다. 그들의 딸 다프네는 불가사의하고 개발되지 않은 자연 존재인 것이다. 그에 대하여 슈트라우스는 다프네를 우선 자연의 의인화로 보았다. 그녀는 아폴로와 디오니소스 신, 즉 예술적인 요소에 감동을 받았으나 이해하지는 못했다. 죽음을 거친 다음 비로소 영원한 예술 작품의 상징인 월계수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슈트라우스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죄과라는 개념의 수용은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아폴로는 충동적인 감정으로 다프네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신격에 그릇된 일을 하였던 것이다. 정갈한 천성의 다프네는 그와의 입맞춤에서 불순한 신을 느끼고 거부하였다. 아폴로는 정화되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를 로이키포스를 통해 말살해 버렸다. 아폴로 자신이 정련되었다는 것은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형되어 구조됨으로 상징하였다. 다프네 자신로 디오니소스 술을 마신고로 계속 그대로 살 수는 없었다. 그녀도 변형이라는 기적을 체험해야 했다.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으로 다시 폭넓게 흐르는 감각적인 선율로 돌아왔다. 소재의 기본적인 성격에 걸맞게 전원적이며 단순 소박하고 평화로운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주곡, 다프네의 독백, 다프네의 변형. 그러나 그 반대로 뇌우의 장면이나 다프네-아폴로-로이키포스가 대결하는 장면은 정열적이며 극적이다. 디오니소스 축제 때의 격렬하고 우미한 춤의 리듬으로 이 작품은 음악적으로 많은 색깔과 변화를 제공하고 있다. 슈트라우스 자신은 아폴로와 다프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많은 비중을 두었는데 다프네가 나무로 변하는 꿈꾸는 듯한 장면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는 교향곡적인 오페라, 벨칸토 오페라, 교양 오페라, 천진 난만한 목가극과 가극이 조화를 이루며 합일되어 있다고 하겠다. "다프네" 총보의 특징은 그의 악기 편성일 것이다. 이 작품은 정하고 성숙한 아름다움과 정선되어 듣기 좋은 음악으로 그의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의 투명한 음향을 상기시킨다.

연극 역사가인 요제프 그레고르가 1935년 7월 7일 작곡가에게 여러 오페라 소재를 보일 때 "다프네"의 초안이 들어 있었다. "다프네"는 최초의 오페라 (1597년 쟈코포 페리와 쟈코포 코르지의 "다프네")며 또한 최초의 독일 오페라 (1627년 하인리히 쉬츠의 "다프네")이기도 하여 슈트라우스가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지극히도 당연하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는 가장 오래된 이 오페라 소재에 새로운 음악극을 입혀 오페라 극장에 공급하길 원했다. 그레고르는 즉시 작업에 들어 갔고 그들 사이에 많은 편지 왕래가 있은 후 1936년 봄 세번째의 그리고 최종적인 각본을 완성하였다. 슈트라우스는 총보를 1937년 12월 24일 완결하여 다음 해 10월 15일 칼 뵘의 지휘로 초연을 보았다.

14.  "다나에의 사랑" op. 83

삼막의 쾌활한 신화

각본: 요제프 그레고르

초연: 1952년 8월 14일 잘츠부르크

등장인물

쥬피터 (바리톤), 메르쿠어 (테노), 폴룩스 (테노, 에로스의 왕), 다나에 (소프라노, 폴룩스의 딸), 크산테 (소프라노, 하녀), 미다스 (테노), 네명의 왕 (2 테노, 2 베이스, 폴룩스의 조카들), 제멜레 (소프라노), 오이로파 (소프라노), 알크메네 (메쪼 소프라노), 레다 (알토), 네명의 파수꾼 (베이스), 폴룩스의 수행원과 신하들, 다나에의 수행원과 시녀들, 평민들

시간과 장소; 신화 시대 그리스, 폴룩스 왕의 궁전

상연 시간; ?약 1 3/4 시간

가극의 내용

일막

알현실에서 폴룩스 왕은 채권자들에게 독촉을 받는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들과 (제멜레, 오이로파, 알크메네, 레다) 결혼한 네명의 조카들이 딸 다나에의 그림을 가지고 미다스 왕에게 갔다며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미다스는 다나에와 결혼할 것이며 모든 것을 금으로 변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그의 부채를 갚을 것이라는 것이다. 다나에는 시녀들에게 금으로 된 비를 맞은 상서로운 꿈을 꾸었다고 이야기했다. 조카들이 부인들과 같이 돌아와서는 보고하길 미다스가 다나에에게 반하여 곧 구혼자를 보낼 것이며 그 자신도 이 곳으로 올 것이라고 하였다. 황금으로 만든 배가 왔다. 미다스 왕은 검소한 옷차림으로 와서 크리조퍼라는 이름으로 그의 지배자를 위해 구혼하며 다나에를 배로 안내하였다. 그녀는 크리조퍼에게 호감을 갖는다. 쥬피터는 미다스 왕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모든 것을 금으로 변하게 하는 능력을 받은 댓가로 미다스 왕은 쥬피터 신에게 언제든지 자신의 모습을 빌려 주고 또 그를 섬겨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었다. 다나에는 쥬피터가 꿈에서 황금비를 내리게 한 장본인임을 깨닫게 되어 의심스러워한다.

이막

쥬피터는 네명의 왕비들이 꾸미고 있는 신방에 들어 온다. 이 왕비들은 이미 쥬피터와 사랑의 모험을 체험한 바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변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신 쥬피터라는 것을 알아 내고 그의 새 애인에 대해 질투하게 된다. 그들이 이번에는 왜 미다스의 모습을 선택했는지 알고 싶다고 하자 쥬피터는 이렇게 하여 자기 아내를 더 잘 기만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러나 미다스 왕은 그에게 다나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한 쥬피터는 저주하길 미다스가 무엇이던지 만지기만 해도 금으로 굳으리라 하였다. 사랑에 취해 미다스가 다나에를 끌어 안으니 정말 그녀는 금으로 된 입상이 되어 버렸다. 절망한 미다스 앞에 쥬피터가 나타나니 미다스가 애원하였다; 다나에에게 신과 사람사이의 선택권을 주라는 것이었다. 쥬피터는 동의하였다. 다나에는 미다스가 당나귀 몰이군이 된다는 것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다스를 택하여 다시 인간이 되었다.

삼막

다나에와 미다스는 동방으로 옮겨졌다. 서로 사랑을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홀가분한 운명이었다. 어릿광대 메르쿠어는 실패한 정사를 두고 쥬피터를 조롱하였다. 네명의 왕비들은 메르쿠어의 인도를 받아 쥬피터를 손에 넣어보려고 시도하나 그는 올림푸스로 돌아가려고 했다. 폴룩스 왕과 조카들 그리고 채무자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쥬피터를 미다스로 간주하고 황금을 요구하였다. 그는 황금비를 내리게 하였다. 폴룩스는 부채를 갚았다. 메르쿠르는 쥬피터에게 다시 한번 다나에를 위해 시도해 보라고 조언하였다. 그는 나그네로 다나에의 오두막집에 나타나 그녀에게 구혼한다. 쥬피터를 알아본 그녀는 그러나 미다스에 대한 정절을 지킨다. 그녀의 사랑에 감명을 받은 쥬피터는 (구애자에서 아버지같은 친구가되어) 그녀를 축복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 갈길을 떠났다.

작품 설명

신화에서 쥬피터의 정사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고로 그에 대해 많은 예술가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사랑을 갈망하는 그는 아내의 질투를 피하기 위해 수도 없이 변신해야 하였다. 황소로 오이로파를 유괴하였고, 백조가 되어 레다에게 왔으며, 구름이 되어 제멜레에게 접근하였고 알크메네에게는 그녀의 남편 모습으로 나타났고 다나에를 황금비로 에워쌌던 그다. 비극이 되던 희극이 되던 시인이나 화가들에게 쥬피터는 많은 주제를 제공한다. 오페라 역사에 있어서도 그에 관한 작품이 있었지만 다나에가 들어 있는 작품이 전해 내려오지는 않았다. 슈트라우스의 고대 그리스에 대한 연결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강해져 "엘렉트라" 이후 "아리아드네", "이집트의 헬레나", "다프네"를 작곡하였다. 사실 1920년에 벌써 슈트라우스는 신화 세계를 다룬 가벼운 각본에 오펜바흐 풍의 오페레타 음악을 달고 싶어했다. 그래서 호프만스탈은 "다나에 아니면 타산적인 결혼"이라는 각본을 썼으나 그가 죽은 지 칠년 후에 지속적인 인상을 받고 그레고르에게 위탁하였다. 일 이막은 호프만스탈의 대본에 지지하면서 그는 다나에의 신화와 미다스 왕에 대한 동화에 쥬피터를 끌어 들여 적절하게 연결한 이 작품의 리브레토를 썼다.

강한 무대 효과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일막에 이어 신방에서 일어나는 이막은 집약적이며 극적인 긴장 상태를 불러 일으킨다. 삼막은 여러 가지 이야기와 회상과 철학적인 관조로 연극이라기 보다는 문학 작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레고르와 슈트라우스는 그들의 마지막 공동 작품을 "쾌활한 신화"라고 칭했지만 쾌활함과 신화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신과 사람이 사랑한 다프네는 둘 다 마다한 반면 다나에는 그 중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이 오페라로 슈트라우스는 오페라 세미세리아라는 장르에 한 작품을 첨부하였다.

일막의 호사한 장면과 또한 이막의 심적 변경를 통한 비밀스런 신비함도 그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그는 무엇 보다도 미다스 왕의 경우처럼 만지는 것마다 음악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들었다. 평이한 단음적인 음악이 있는가 하면 교묘한 대위법적인 음악이 펼쳐져 황금비의 후가토는 십육분음표의 스타카토 황금 물방울 동기와 세잇단음표의 쥬피터 동기로 구성되었다. 합창으로 크게 설치된 앙상블이 있는가 하면 유절의 가곡, 또 장중한 독백도 등장하는 것이다. 말하기 좋아한다는 것은 풍부한 전조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슈트라우스는 1944년 친구이자 음악학자인 빌리 슈에게 이 작품의 삼막을 자신의 작곡물 중 잘된 것에 속한다고 하였다. 미다스와 다나에의 사랑은 슈트라우스의 서정적인 선율과 따뜻한 관현악의 음색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1940년 6월 28일 가르미쉬 별장에서 완성되었다. 전쟁기간이라 보통 이상으로 지체되었으나 1944년 여름 잘츠부르크 축제때 초연될 예정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총력전의 발포와 모든 극장의 폐쇄로 상연될 수 없었다. (프루트벵글러의 교섭으로 1944년 8월 16일 말하자면 팔십세된 작곡가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정해진 사람들만이 참가한 총연습이 있었다.) 이 오페라는 팔년 후인 1952년 8월 14일 잘츠부르크에서 드디어 초연되었다. 작곡가 슈트라우스는 이미 삼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15.  "카프리치오" op. 85

일막의 음악을 위한 대화극

각본: 클레멘스 크라우스

초연: 1942년 10월 28일 뮌헨 (국립극장)

등장인물

백작 부인 (소프라노), 백작 (바리톤, 그녀의 남자 형제), 플라만트 (테노, 음악가), 올리비에 (바리톤, 작가), 라 로쉐 (베이스, 무대 감독), 여배우 클레론 (알토), 타우페 (테노, 후견역), 두 명의 이탈리아 가수 (소프라노, 테노), 청지기, 하인, 음악가 등등

시간과 장소; 파리에서 글룩이 성공하기 시작한 때 즉 1775년 경 파리 근방의 성

상연 시간; 약 2 1/4 시간

가극의 내용

파리 근처에 위치한 로코코 성의 정원을 내다보는 방에서 작곡가 플라만트와 작가 올리비에는 응접실에서 플라만트의 작품을 연주하도록 한 젊은 과부인 백작 부인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예술에 심취한 이 부인에게 반해 있다. 그들은 각자 그녀가 자신의 예술을 선호한다고 확신하며 그녀의 애정도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확고한 주의는 말이 있은 다음에 음악이 있다는 것이고 작곡가는 그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자매 예술에 대한 오랜 논쟁에 백작 부인의 판단이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에는 무대 감독 라 로쉐도 있었는데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잠들어 버렸다. 음악이 끝나자 잠에서 깨난 그는 부드러운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잘 자게 된다고 진술하였다. 작가와 음악가는 격분한다. 그러자 이 감독은 자기 없이는 그들의 작품이 종이 조각에 불과한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대부분의 관중이 륄리나 라모 또는 글룩의 숭고한 오페라를 지루하다고 여기며 거장 피치니의 오페라 부파같은 듣기 좋은 음악을 결정적으로 선호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고 하였다. 또 그들의 관심은 잘해야 장식이나 복장 그리고 테노 가수가 얼마나 높은 음을 내고 있는지에 향해 있다는 것이다.

오늘 올리비에의 작품이 시연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배우 클레론이 파리에서 오기로 되어 있다. 그녀는 올리비에와의 관계를 끊었지만 올리비에는 그녀의 예술을 높히 평가하여 숭배하고 있다. 백작 부인이 남자 형제인 백작과 나타나자 모두 극장으로 향했다. 백작 부인은 오늘 들은 음악에 심취해 있다. 백작은 그녀의 감탄이 음악 뿐만 아니라 작곡가에게도 향한 것 아니냐고 하며 자기는 올리비에가 쓴 재기 넘치는 글에 감격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녀는 신랄하게 대꾸하길 그의 관심이 작가의 글을 전달하는 여배우 클레론에 더 세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플라만트, 올리비에, 라 로쉐는 극장에서 돌아 오서 그들에게 백작 부인의 생일 축하를 위한 프로그램을 알렸다; 먼저 플라만트의 진포니아, 그리고 올리비에의 연극 작품 (여기에 백작은 연인의 역할을 맡기로 함), 끝으로 뛰어난 장식품과 발레 그리고 이탈리아의 오페라를 즐기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 다음에는 충성을 맹세하는 극이 있는데 제목과 내용은 당분간 비밀로 한다고 말했다. 클레론이 도착하여 인사를 한 후 백작과 올리비에 작품의 한 장면을 낭송해 보고 오늘 아침 오리비에가 쓴 아름다운 14행시로 끝을 맺었다. 그녀는 백작의 능력에 만족한다. 그녀는 그와 무대 감독과 같이 연습하러 극장으로 들어갔다. 올리비에는 자신의 사랑의 소네트를 백작 부인에게 낭독하고 플라만트는 쳄발로에 앉아 한 멜로디를 변주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백작 부인이 들고 있는 소네트가 적힌 종이를 가로 채 살롱으로 들어갔다. 이 시를 작곡하려는 것이다. 올리비에는 자신의 아름다운 시가 음악으로 보기 흉하게 일그러질거라는 생각에 깜짝 놀랜다. 그러나 백작 부인과 단 둘이 있는 이 기회에 그의 사랑을 고백하며 승리자에게 영관을 줄 것을 요구했다. 바로 이때 플라만트가 뛰어 들어 와서는 쳄발로에 앉아 작곡한 시를 노래하며 연주하였다. 백작 부인은 감격해 듣더니 악보를 집어 들고는 양쪽 예술가들을 향하여 말했다; "내 소네트에서 당신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이 합일하였군요."

올리비에가 감독에게 불리워 극장으로 가니 플라만트는 백작 부인에게 자신의 사랑을 정열적으로 고백한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 결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일 아침 11시 작곡가가 서재로 오도록 한다. 거기서 그녀의 결정을 통지하려는 것이다. 연습이 끝나 백작이 돌아오자 백작 부인은 극작가와 작곡가가 동시에 그녀 마음을 사로 잡는다고 하니 백작은 야유하며 도데체 무엇이 되려고 그러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혹시 오페라가 되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대꾸한다. 극장에서 클레론, 감독 그리고 올리비에가 기분이 좋아 돌아왔다. 다 같이 원기 회복을 위해 쵸코릿 차를 마실때 감독은 무용수와 이탈리아 가수의 공연을 제공한다. 이때 말이냐 음악이냐하는 토론이 벌어지며 오페라의 문제점이 논의되었다. 끝으로 백작 부인은 서충식의 계획을 밝히라고 독촉하니 감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기념제에 대해 설명한다. 전반부는 "아테네의 탄생"이라며 이 신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작곡가와 극작가가 빈정대기 시작했다. 후반부는 "카르타고의 멸망"이라고 하니 축제에 적당치않은 소제라고 헐뜯었다. 라 로쉐는 그들에게 자제하라고 하며 연극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전문가를 이렇게 모욕할 수 있느냐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의견이 점점 더 분분해졌음에도 끝까지 개선 장군처럼 자신을 찬미하였다. 열렬한 박수가 터져 왔다. 이 때 백작 부인은 발의하길 모두들 라 로쉐의 말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같이 축연을 위한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오페라를 창조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오페라의 소재로 백작이 오늘 일어난 일을 작품화하자는 제의에 다 찬성하게 되었다. 한 하인이 방을 치우려 들어 오고 그들은 제각기 오늘 경험한 사건을 혹평하거나 주해를 단다. 청지기가 가닥진 촛대에 불을 붙이는 동안 자그만한 남자가 책을 팔에 끼고 비틀거리며 들어 왔다. 그는 프롬프터인 타우페씨로 연극 연습하는 동안 잠들었었다. 청지기가 누구이십니까하고 물으니까 마술 세계의 보이지 않는 군주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파리로 돌아가야 하나? 청지기는 가엾고 궁색한 그를 돌보아 마차를 불러 이미 클레론과 백작 그리고 그 외 사람들이 간 파리를 향해 그와 같이 떠나간다. 백작 부인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텅 빈 방으로 들어 왔다. 돌아온 청지기는 그녀에게 백작이 불참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했다. 올리비에는 내일 아침 11시에 서재에서 어떻게 오페라가 끝날건지 듣기 위해 백작 부인을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 시간에 플라만트를 오라고 한 걸 상기하고는 당황한다. 소네트가 만들어 진 후 그녀에게 확실한 것은 작가와 음악가는 서로 분리할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는 거였다. 그는 하프를 껴안고 직접 반주하면서 소네트를 노래하였다. 그녀는 격정에 사로 잡혀 벌떡 일어나 채경을 보며 누구를 위해 결정해야 하는지 자문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영상도 이 오페라의 결말에 대한 대답을 줄 수 없었다. 극작가를 아니면 음악가를 더 사랑하는지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말인지 음악인지 가늠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청지기가 들어와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하였다. 그러자 백작 부인은 부채로 자신의 영상에 요염한 신호를 보내고 깊히 무릅을 굽혀 우미한 작별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아 콧노래로 소네트의 가락을 흥얼거리며 식당으로 향했다. 청지기는 놀라 어안이 벙벙하여 거울을 흘끗 본 다음 백작 부인을 목송한다. 이 오페라는 미정으로 끝난다. 백작 부인과 올리비에 그리고 플라만트의 사적인 운명 뿐만 아니고 공동 작품에서 자매 예술인 시와 음악의 선재성에 대한 물음도 결정되지 않았다. 시와 음악은 각각 떨어져서 보다는 합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 설명

슈트라우스가 "그림자 없는 여인"에서 "엘렉트라"와 "낙쏘스섬의 아리아드네"의 통합을 얻고자 힘썼다면 이 작품으로는 음악극의 완전한 창작가로 자신이 평생 숭배한 거장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음악적 표현 요소를 융합하려고 하였다. 50년 간의 오페라 작곡 경험과 만년의 지혜로 그는 음악적인 어법에 있어 그의 고유 양식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에서 오페라에 대해" 한담하는 신식 작품을 산출하였다. 또한 이 오페라의 독창성은 올리비에와 플라만트에 의해 만들어질 오페라 자체가 이 "카프리치오"라는 것이다. 이 작품이 큰 무대 효과를 갖을 수 있던 것은 특히 연극에 관한 실무적인 의문점에 아주 정통한 각본가와의 합작 덕분이다. 카스티 (Giambattista Casti)의 각본 "맨먼저 음악, 그 다음에 언어"로 부터 고무를 받은 슈트라우스는 카스티처럼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예술에 대한 의문를 무대 위에 올려보고 싶었다. 처음에 그는 오페라가 아니고 "연극적인 푸가", "희곡 작법에 대한 논술"을 작곡하여 "다프네"의 전주곡으로 쓸 생각이었다. 이 계획에 대해 전해들은 뮌헨 오페라 총감독인 클레멘스 크라우스는 줄거리가 없는 무대 작품은 존속할 수 없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것을 납득한 슈트라우스는 크라우스에게 각본을 위탁하였고 이 각본은 이들사이 많은 의견 교환을 거쳐 완성되었다. 크라우스는 이 작품에서 취급된 문제가 일반적으로 열띠게 토론되던 시간과 장소로 재치있게 줄거리를 옮겼으며 (글룩이 활동하던 때의 파리) 푸가에 대한 착상 (언어냐 음악이냐라는 주제에 대한 토론)을 제공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슈트라우스는 소재의 형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피가로"의 이막 종결부처럼 큰 중창을 원하는 슈트라우스의 뜻에 따라 크라우스는 그가 아주 만족해한 팔 중창을 썼다. 특히 오페라의 끝에 사적인 관계 뿐만 아니라 말이냐 음악이냐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은 슈트라우스의 의도였다.

주를 이루는 것은 투명한 낭독조와 좌담체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자유롭게 끼어 있는 봉쇄된 형태의 번호붙은 음악으로 또한 여러 가지 음악적인 효과를 성공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처음에 호화로운 현악 육중창으로 이원론적인 문제가 제기되며 이 작품의 음악적인 중심점은 소네트인데 이 선율은 이어져 나오는 삼중창에서 찬가로 상승되고 끝부분에서 백작 부인의 긴 독창 장면에 다시 돌아온다. 그외 서정적인 분출은 마지막 장면을 준비하는 관현악 간주곡과 이탈리아 가수들이 부르는 벨칸토 이중창이다. 효과적인 성격 묘사의 음악으로 가보트나 지그같은 춤곡과 여신 하르모니에 대한 우스꽝스런 "경의의 사중창", 특히 극장 감독 라 로쉐가 연극에 대한 자신의 공로를 자찬하는 식사를 들 수 있다. 작곡가의 탁월성은 여섯 명의 주연기자들이 말이냐 음악이냐하는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성악 푸가와 팔 중창 (일부; 비웃음의 중창, 이부; 언쟁의 중창)에서 명시된다.

모차르트는 각본을 "음악에 순종하는 시녀"라고 명명한 반면 글룩은 그 반대로 각본을 확고 부동한 토대로 보았다. 말하자면 그림의 스케치에 해당하는 각본에 음악으로 색을 입힐 뿐이라는 견해를 지지하였다. 평생 슈트라우스는 이런 오페라의 기본적인 문제점, 즉 문학 작품과 음악 사이의 중요도 분배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하여 위대한 작가와 합작하였으며 또 음악이 방해할 정도로 우위를 차지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는 "카프리치오"로 양자가 충분히 융합된 이상적인 총보를 이룩하였다; 언어가 중요할 때면 언어가 음악이 중요할 때면 음악이 권리를 얻는다. 이 작품에 대한 계획은 벌써 1939년 늦여름에 있었는데 작곡은 주로 1941년에 이루어져 2월에는 전체 음악이 스케치되었고 7월에는 총보가 완성되었다. 그는 "저녁마다 1800명의 관중을 위한 작품은 아니다. 아마도 문화 생활을 미식가처럼 즐기는 이들에게 맛있는 한입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뮌헨에서 각본도 쓴 크라우스가 지휘한 초연은 (1942년 10월 28일) 또한 일반 관중의 박수 갈채도 불러 일으킨 대성공이었다. 전문가와 애호가를 위한 대화오페라며 한 거장의 마지막 오페라인 이 작품은 수 많은 오페라 극장의 크고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 오늘날까지 상연 목록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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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uss life and work:  http://www.kclee.de/kyung/music/strauss/LifeAnd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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